[우리는 '제주파(派)'] 19 전업주부·작가 오성근씨

살림꾼으로 가정·사회내 성평등화 실천 앞장
자녀 키우기 '즐거움'…대안학교 만들기 꿈

'밥상 차리는 남자'로 14년차를 맞았다. TV드라마에서 '살림하는 남자'를 종종 '취업 못해 할 수 없이 앞치마를 두른 못난 사내'로 비추는 경우와는 다르다. 직업도 있었지만 아내를 위한 자발적 선택이었다. 아이를 위해 살림은 물론 육아까지 도맡아 온 시간에 「매일 아침 밥상 차리는 남자」「Hello! 아빠 육아」 를 출간하기도 했으며 기관·단체에서 요청한 강의도 수차례, 전업주부이자 작가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다. 이제는 아이가 아빠 품을 떠나 자신의 인생을 가꾸고 있다. 남자에게 찾아온 변환점이다. '나만의 시간'이 생긴 것에서 또 다른 인생 꿈을 꾸고 있다.

△제주서 살아가는 법

밥상맨으로 유명한 오성근씨(48)는 '산굼부리'매력에 꽂혀 3년을 제주앓이 한 끝에 2006년 섬 안으로 삶을 옮겨왔다. 하지만 이유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딸 다향(14)이가 자유롭게 놀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경쟁'이 아닌 '자유로움'을 만끽하게 해주고 싶었던 바람은 제주 안 홈스쿨링으로 이어졌고 지금은 섬 밖 대안학교에서 자립하고 있는 다향이를 응원해 주고 있다.

집 안 장남으로 '살림꾼'을 자처했던 오 씨의 선택에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지만 가사와 육아는 '공동의 몫'이란 생각은 변함없다. 그리고 사회에서 성 평등화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가정 내 평등이 우선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오 씨는 "어릴 적 어머니에게 라면을 먹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여동생에게 시켰다"며 "'오빠라는 그리고 남자라는 이유로 내가 대접받을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고 '가정의 민주주의'를 외치게 된 이유를 밝혔다.

살림과 육아, 사회 내 여성의 지위 향상에 눈길을 두던 오 씨에게 고개를 갸우뚱했던 주변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오 씨를 찾아와 육아 상담은 물론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나눠본다. 서귀포시 표선면 하천리에 자리 잡은 '둥구나무'는 오 씨를 찾은 이들이 편히 쉬다 갈 수 있도록 하는 마음에서 만들어진 곳이다.

오 씨는 스스로를 '무당노릇'에 비유하며 "나를 만나 가슴 속에 있던 불합리를 분노를 치료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간다면 그 걸로 만족한다"고 밝혔다.

또 "주위에서 페미니스트라고 부루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그저 휴머니스트에 가깝다"며 "여성과 남성 모두가 행복한 게 좋다"고 말을 이어간다.

▲ 오성근씨가 운영하는 둥구나무
△대안학교 만들기

젊은 날, 30대를 살림과 육아에 온전히 쏟아 부었던 오 씨에게 또 다른 꿈이 생겼다. 아이를 키우며 아쉬웠던 부분에 '대안학교'라는 말을 조심스레 꺼내본다.

오 씨는 "때묻지 않은 제주의 자연 속에서 아이들이 실컷 뛰어놀 수 있는 제대로 된 대안학교를 만들어보고 싶다"며 "잘 놀고, 잘 먹고, 잘 자는 그리고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일깨우는 그런 곳으로 만들고 싶다"고 향후 계획에 운을 뗐다.

당장에 실천이 아닌 오랜 시간이 필요한 만큼 급하진 않지만 '꼭'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육아에 전념했던 이유에설까 오 씨를 찾아와 아이 문제로 상담하고 가는 부모를 보면서 가졌던 안타까움을 털어놓는다.

오 씨는 "인생은 백미터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이다. 오래 지켜봐야 하는 것"이라며 "아이들의 미래를 어른들의 틀에서 재단해서는 안된다. 아이들을 지켜보고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움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주문한다.  고혜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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