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173>4·3특별법 개정작업②

▲ 국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강창일 의원. 2006년 9월 국회 행자위 법안심사소위 위원장이었던 그는 4·3특별법 개정안 심의과정에서 특유한 순발력으로 핵심조항을 살려냈다.
강창일 위원장 순발력 핵심조항 살려내
유해발굴사업, 4·3평화재단 설립 등 탄력

4·3특별법 개정작업②

2006년 9월7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가 비상한 관심 속에 열렸다. 1년여간 통과여부를 둘러싸고 그동안 논란이 계속됐던 제주4·3특별법 개정안도 상정됐다. 이날 회의에 특별한 관심이 모아진 것은 4·3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한 강창일 의원이 법안심사소위 위원장 자격으로 의사봉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은 열린우리당 강창일 의원 이외에도 한나라당 박찬숙 의원, 민노당 현애자 의원이 각각 발의해서 3건의 개정법률안이 국회에 접수되어 있었다. 이것을 '행자위 대안'으로 통일해서 이날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된 것이다.

그런데 행자위 대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배·보상 조항, 4·3사건 정의 재규정, 추가 진상조사단 구성, 국가기념일 지정 등의 주요한 알맹이가 빠져 버렸다. 예산이 수반되는 조항은 정부 측에서, 국가기념일 지정 등은 다른 과거사사건과의 형평성 문제로 반대가 있었고, 추가진상조사는 앞으로 발족될 4·3평화재단에서 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수정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날 상정된 개정안에는 희생자 범위에 계속 논란이 됐던 '수형자'를 포함하는 내용을 비롯해 유족 범위를 '4촌 이내의 혈족'으로 확대하는 내용, 집단학살지 조사와 유해 발굴 조항, 4·3평화재단 기금의 정부 지원 조항, 재심의 규정 신설, 호적 정정 개정 내용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국회 법안심의 과정에 참여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가장 주요한 심의절차가 바로 각 상임위 법안심사소위이다. 이 과정을 통과하면 8부 능선을 넘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수형자'를 희생자 범위에 추가하는 문제는 여전히 국방부·경찰청 등이 반대했고, 평화재단 기금 지원문제는 예산당국이 반대 의견을 표명하고 있어서 녹록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날 법안심사소위의 4·3특별법 심의는 엉뚱한 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심사 순서에 따라 맨 처음 상정된 것이 유족의 범위 확대 조항이었다. 즉 '형제자매가 없는 경우 제사를 봉행하거나 분묘를 관리하는 사실상의 유족 중 4촌 이내의 혈족'까지 유족 범위를 넓히자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열린우리당 한 국회의원이 나서서 반대하는 것이 아닌가. 다른 법률에도 없는 조항을 만드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 있다면서 정부 측 인사를 향해 "다른 법률에 없는 거죠?"라고 물었고, 장인태 행자부 2차관은 "그렇다"고 답변을 하는 것이 아닌가.

뒷자리에 배석했던 필자는 그 순간 "그게 아닌데"하는 생각이 스치면서 손을 들었다. 속이 상했던 강창일 위원장은 나를 보더니 얼른 "전문위원이 이야기해 보라"고 발언 기회를 줬다. 나는 민주화운동 및 5·18 관련법에는 유족의 범위를 '민법상의 재산상속인'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4촌 이내 방계혈족까지 유족으로 인정하는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강창일 의원의 특유한 순발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감히 국회에서 거짓 보고를 할 수 있느냐"고 장 차관을 몰아붙인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법안 심사를 할 수 없다고 배수진을 치며 버티기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자 여·야 의원들이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의원 저마다 자기들이 신경을 써야 할 법안을 통과시켜야 할텐데 법안 심사를 못하겠다고 버티니 오히려 강 위원장을 설득하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한참을 버티던 강 위원장은 "그러면 4·3특별법은 맨 나중에 심의할 터니 그 사이 똑바로 알고 대답하라"고 으름장을 놓고 심사를 속개했다.

그런 소동이 있었기 때문인지 그날 4·3특별법 개정안은 별 문제없이 통과됐다. 당초 염려됐던 수형자 규정과 평화재단 지원 근거, 희생자 유해 발굴 조항 등이 그대로 의결된 것이다.

오래 끌던 4·3특별법 개정안이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하자 4·3유족회와 연구소 등은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일부 4·3단체에서는 중요한 추가 진상조사 조항이 빠졌다면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필자는 그해 10월28일 4·3유족청년회가 주최한 워크숍에서 주제 강연을 통해 4·3특별법 개정 문제는 "내용을 우선할 것인가 시기를 우선할 것인가 전략적 선택이 필요하다"고 전제하고 "현 시점에서 최선을 다한 개정안"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민주화와 5·18 관련 법률도 6차례 이상 개정한 사실이 있음을 상기시켰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국가기념일 지정 등을 담은 제2차 4·3특별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지만, 심사조차 안되고 있는 실정이다. 만약 그때 특별법을 개정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될 뻔 했는가.

4·3특별법 개정법률은 2006년 12월2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2007년 1월24일 법률 제8264호로 공포됐다. 이로써 수형자 심사, 희생자 유해 발굴, 평화재단 설립 등이 탄력을 받게 됐다.

☞다음회는 '4·3희생자 유해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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