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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계절, 정치의 계절<고연숙 제주교육과학연구원 연구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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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11-06 (화) 21:33:45 | 승인 2012-11-06 (화) 21:33:45 | 최종수정 2012-11-08 (화) 13:32:32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가을을 표현하는 말들은 다양하게 많다. 흔히 가을을 ‘낙엽의 계절’이라 하는데, 가을에 낙엽이 지는 것은 너무 당연해 수사적 상상력이 다소 떨어지는 표현이다. 가을을 ‘고독의 계절’이라고도 하는데 굳이 여름과 겨울 사이에 특별히 고독할 것은 무엇인가. 우울한 기후 탓이라면 삭풍 부는 겨울이 훨씬 더 고독하지 않은가.

‘남자의 계절’이니 ‘낭만의 계절’이란 말도 애매하긴 마찬가지다. 계절을 사람들의 자의적인 느낌에 따라 여자, 남자로 나누는 것이 타당하지 못하다면 이도 설득력이 약하다. 또한 가을을 낭만의 계절이라고 한다면 봄․여름엔 낭만이 없단 말인가. 서산에 지는 해를 배웅하며 달빛을 마중하는 모든 계절에 낭만과 고독은 존재해 왔고, 사람들은 그를 보고 시(詩)를 짓고 음악을 만든 것이 아닌가.

가을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수식은 바로 ‘독서의 계절’일 것이다.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에서는 일 년 동안 일군 곡식을 거두기도 좋지만 책읽기에도 좋은 때이다. 그래서 천고마비 계절의 독서는 사람을 살찌운다는 말도 생겨났다. 하지만 올 가을엔 유난히 책이 잘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정치에만 쏠려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도래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국가들의 대선이 맞물리는 묘한 시기이기도 하다. 몇 달 전 프랑스에서는 좌파 정권이 등장했고, 미국은 지금 공화당과 민주당이 각축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대선을 치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세 명의 대통령 후보가 한 치의 양보 없는 호각지세(互角之勢)를 벌이고 있다. 어쩌다 모임 자리에서 자칫 잘못해 정치 얘기를 꺼냈다간 시비에 휘말리거나 심한 경우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평소에는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것 같던 사람도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 동의하지 않으면 거침없이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대선을 앞두고 국민 모두 정치평론가가 되고 대선 후보의 대변인이 되어 있다.

이런 상황이니 누구를 찍어야 할 것인가 더욱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람에게 국정을 맡겨야 할 것인가? 대통령은 어떤 자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가?

모름지기 정치란 다수의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조율하는 것이다. ‘정치’라는 말이 고대 그리스어의 ‘폴리스(polis)’라는 말에서 유래했듯이, 대중들의 다양한 의견을 조율하여 훌륭한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동양에서 말하는 ‘정치’는 더 적극적인 통치의 의미를 지닌다. ‘정’(政)은 바르지 못한 것을 바르게 잡는다는 의미이며,‘치’(治)는 물이 넘쳐서 피해를 입는 것을 수습하고 물을 잘 다스려 피해를 막는다는 의미가 있다. 잘못된 것을 바르게 잡고, 사람들의 생각을 잘 조율하여 적절한 선택을 내리는 것이 정치이며, 대통령은 그 정점에 서 있는 사람이다.

우리사회에는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비참한 삶을 영위하는 다수의 빈곤층과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헤매는 노인층, 그리고 일할 능력은 가졌으나 기회를 찾지 못한 청년 실업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최소한 이 나라를 이끌어 갈 대통령이라면, 백성들의 곤궁한 삶을 진정으로 헤아릴 줄 알고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백성을 위한 정치라는 지극히 당연한 기본적 명제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개혁이니 쇄신이니 하는 구호에만 몰두하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 독서의 계절과 함께 정치의 계절도 무르익어 간다. 그러나 ‘독서의 계절’에 독서하는 사람이 많지 않듯이, ‘정치의 계절’에 올바른 정치는 없고 지겨운 소음만이 가득하다. 진정으로 국민과 나라를 위한 정책이나 비전의 제시보다는 앞뒤도 맞지 않는 온갖 시비와 다툼만 넘쳐나고 있으니 푸른 가을 하늘이 부끄럽다.

휴일 어느 도서관에서 독서 삼매경에 빠져든 어린 학생들의 모습을 본다. 그들이 읽고 있는 책 속에는 어떤 계절이 오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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