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178> 4·3위원회 폐지 논란

   
 
  2008년 1월30일 한나라당의 4·3위원회 폐지 추진에 격앙된 4·3유족들이 초상집을 연상시키는 상여를 메고 가두시위를 하면서 격렬하게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인수위 4·3위원회 폐지 방침에 여론 격앙
도내 정치권·단체 총공세 폐지 시도 저지

4·3위원회 폐지 논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으로 이어지던 민주정부 10년을 마감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보수정권이 닻을 올린 것이다. 겨우 제자리를 찾던 4·3 진실 찾기와 명예회복 운동도 이때부터 시련을 맞게 됐다. 보수진영의 조직적인 반격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들의 공격 목표는 제주4·3위원회의 폐지, 4·3진상조사보고서의 폐기, 4·3희생자 결정의 무효화, 4·3평화기념관의 개관 중지로 모아졌다.

그 시발은 엉뚱하게도 새해 벽두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부터 터져 나왔다. 그해 1월4일 대통령직인수위는 행정자치부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정부 산하 위원회를 대폭 정리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밝혔다. 인수위는 우선 과거사 관련 위원회 14개와 국정 과제 관련 위원회 12개 등 26개 위원회를 폐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 폐지 대상 위원회 속에 4·3위원회가 포함되면서 제주사회가 벌집 쑤신 듯 들끓기 시작했다.

먼저 포문은 제주도내 14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제주4·3민중항쟁 60주년 정신계승을 위한 공동행동 준비위원회'가 열었다. 이 단체는 1월5일 성명을 발표하고 "금년은 4·3 60주년을 맞는 해여서 각계각층에서 이에 대한 준비가 한창인데도 이명박 정부는 출범하기도 전에 4·3 문제를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행보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1월6일에는 4·3유족회와 4·3도민연대 등 4·3 관련단체들이 나서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지난 대선 기간 제주도민과 약속했던 4·3 관련 공약을 잊었느냐"고 반문하고 대통령직인수위가 밝힌 4·3위원회 폐지 방침이 확실한 것인지 그 진위를 밝히라고 촉구했다.

이런 단체들의 반발에 한나라당 제주도당이 무마 작업에 나섰다. 제주도당은 1월7일 밝힌 성명을 통해 "4·3위원회는 4·3특별법에 따라 설치된 위원회이기 때문에 위원회를 없애려면 4·3특별법을 폐지하거나 개정해야 한다"면서 "4·3위원회가 개별법에 따라 설치된 조직인데다 활동의 독립성이 보장된 기구라 정리 결정이 쉽지 않다"고 밝힌 것이다. 그러니 "자의적인 판단으로 여론을 호도하지 말라"고 피력했다.

그게 맞는 말이다. 4·3위원회를 폐지하려면 4·3특별법을 폐기하거나 개정해야 한다. 한나라당 제주도당의 염원과 달리 중앙당은 그 길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나라당 중앙당은 1월21일 한나라당 국회의원 130명 전원이 발의한 45개 법률 제·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 속에는 4·3특별법 개정법률안도 포함되어 있었다. 개정 골자는 4·3위원회를 폐지하고, 남은 업무는 진실화해위원회가 통합해 수행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명박 정부의 과거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그대로 깔려 있었다. 과거사위원회 가운데는 법으로 존치 기한이 명시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있다. 한나라당은 존치 기한이 명시된 5개 위원회를 우선 폐지하고, 존치 기한이 명시되지 않은 4·3위원회 같은 9개 위원회는 진화위로 통합했다가 나중에 폐지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진화위도  2010년 10월이면 종료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4·3 관련단체 만이 아니라 제주도청년연합회 같은 일반시민단체, 제주도와 도의회, 야권 정치권 등이 나서서 아직 출범도 하지 않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총공세에 나섰다. 1월30일에는 4·3유족회 회원 300여명이 4·3위원회 폐지 법안 철회 촉구 궐기대회를 가졌다. 김두연 회장 등이 두건을 쓰고 상여를 메어 시가지를 행진하는 특별한 시위도 벌였다. 상경 투쟁도 이어졌다.

총선을 코앞에 둔 한나라당 제주도당은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주도당 임원진은 2월4일 중앙당사를 방문, 격앙된 제주 현지 분위기를 전하고 4·3위원회 폐지 방침 재검토를 요구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인지 여야의 협상 과정에서 4·3특별법 개정 등은 나중에 다루는 것으로 정리됐다.

하지만 그해 4월 열린 총선에서 제주지역에선 민주당이 3석을 모두 휩쓸었다. 언론들은 제주에서 한나라당이 완패한 이유에 대해 4·3 6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여권이 무리하게 시도한 4·3위원회 폐지 등이 지역정서를 자극했다고 분석했다.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한 4·3특별법 개정안이 드디어 그해 연말 정기국회에 상정되자 제주사회에서는 '한나라당 제주4·3특별법 개정안 반대 범도민대책위원회'를 결성해 맞섰다. 이 대책위에는 모두 47개 단체가 참여했는데, 4·3운동사에 새로운 기록을 세운 이례적인 단체 참여 수였다.

결국 한나라당은 이런 반발에 부딪쳐 끝내 4·3위원회를 폐지하는 법률 개정을 추진하지 못했다. 다만 2009년에 와서 행정안전부 산하 기구인 4·3지원단을 폐지하고. 남은 업무는 과거사지원단에서 대신 처리하는 것으로 실무기구를 축소 조정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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