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연 제주대 생활환경복지학부 교수·논설위원

   
 
     
 
연말이 다가오다 보니 이런 저런 모임이 많아졌다. 얼마 전 오랜 친구들 모임에서 한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과거에 비해 우리가 소득수준이 높아졌지만, 행복은 그 만큼 늘어나지는 않았어. 앞으로 소득이 4만 달러를 넘는다고 해도 그것이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야. 나는 앞으로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삶을 만들 대통령을 찍으려고 해" 맞는 말이다. 얼마 안남은 선거에서 우리는 미래의 삶을 행복하게 할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모든 사람이 행복을 원하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막상 앞으로 어떻게 해야 우리의 삶이 더 좋아지고 행복해질 것인 가에 대해서는 합의는 커녕 논쟁이 일어나기가 쉽다.   

어떤 문제에 대해 1개의 해법만이 존재한다면 갈등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사회 문제에 있어서 1개의 답이란 불가능하며, 사회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다양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기 마련이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이제 우리나라는 중국집에 간 열 명의 사람들이 모두 '자장면'을 외치던 시대에서 '자장면 여섯, 짬뽕 넷'을 거쳐, '자장면 하나, 짬뽕 하나, 울면 하나, 기스면 하나…'의 시대를 향해 가고 있다.

사실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이나 삶의 방향은 서로 차이가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사회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이 반응하고 적응해가는 방법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 미국의 심리학자 그레이브스(Graves), 베크(Beck), 코완(Cowan)이 함께 제시한 사회의 변화에 따른 인간의 가치체계(value system) 모델은 이에 대한 설명으로 유용하다.   

이들에 따르면 사회의 변화에 따라 인간의 가치체계는 8가지로 구분되는데, 이 가치체계들은 제일 아래 단계인 1단계가 생존의 가치체계이며, 가장 높은 단계인 8단계는 통합의 가치체계이다.

1단계는 용어가 의미하듯 생존을 위한 본능이 중요한 가치체계를 이루는 사회인 반면, 마지막 단계인 8단계에 가면 사회 전체가 조화를 이루며 범세계적 공동체로 살아가는 이상적인 가치체계의 수준에 달하게 된다.

이들은 가치체계가 한 단계의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으로 간 후 바로 위 단계로 발달해가는 나선형의 소용돌이 모습(spiral dynamics)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한 때 '잘 살아보자'라는 대통령의 말만으로 모든 것이 용납되고,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한 사회의 가치체계는 4단계로, 미래의 보장과 삶의 목적 속에 권력이 가치체계의 중심부를 이룬다.

현재 우리나라는 4단계에서 5단계로 진입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기존의 안정과 질서로부터 벗어나 자율성과 기회 및 성취 등을 중시하는 가치체계가 나타나게 된다. 사회의 변화에 따른 가치체계의 발달은 '나'와 '우리'라는 관점이 교대로 나타나며, 자기표현의 방식과 함께 자신의 내면과 외부를 어떻게 조화롭게 일치시킬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가치체계는 성·세대·지역·문화 등에 따라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의 발전에 따라 달라진다. 서로 다른 가치체계로 인해 부부나 부모자녀, 친구 같은 개인 관계 뿐 아니라 경영자와 근로자, 여야 정치가들과 같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수많은 갈등적 관계가 초래된다. 가치체계가 무엇인가에 따라 일어나는 일에 대한 설명과 그에 대한 해결방법 등의 우선순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가치체계의 우선순위는 '옳은' 반면, 자신과 다른 것은 '틀렸다'는 판단을 한다. 그 결과 '나'와 가치체계가 비슷하고 우선순위가 같은 사람이 '좋은 사람'으로 상향조정 되기 쉽다. 그래서 현재의 소용돌이 대통령 선거에서 '나'와는 다르더라도 '우리' 나라를 위해 바람직한 가치체계를 갖고 있는 대통령이 누구인가를 자문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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