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직 외과 전문의·논설위원

   
 
     
 
먼 기억 속에 남아있는 크리스마스의 추억을 떠 올려본다.

유년 시절 아버지가 변신한 산타 할아버지, 그 해 성탄 선물로 받은 하얀색 두 줄의 까만 운동화. 새벽 잠 설치며 기다리던 새벽종, 성탄 이브 음악회, 거리 캐럴의 18번 징글벨 소리, 연인들의 낭만, 그리고 막연한 마음 속 설렘.

이제는 모두 사라져 나와는 상관없이 된 것 같은 저 너머의 그리움이 됐다.

성탄절의 유래를 살펴보면 재미있다.

사실 12월25일은 역사 속의 예수 탄생과는 전혀 무관한 날이었다. 기독교 초기 예수 탄생일을 1월6일, 3월21일(춘분), 12월25일 가운데 어느 하루로 선택해 지켜 오다가 로마 교회(서방교회)가 12월25일을 성탄절로 지키게 된 것은 354년께부터로 보이며, 조금 뒤인 379년부터 그리스교회(동방교회)가 이를 따른 것으로 돼 있다.

기독교가 12월25일을 성탄절로 지키게 된 것은 농경사회 로마가 원래 지켜오던 이교도적 태양 숭배 사상과 관련 있는 사투르날리아라는 동지께에 벌어지는 농경 신 새턴의 축일을 그리스도의 탄생과 결합시킨 것이라 한다. 사투르날리아는 12월17일에서 19일까지 열렸으나 나중에는 23일까지 연장해 7일간이나 계속됐다. 처음에는 씨를 뿌리고 그 씨앗의 발아성장과 그 해의 풍작을 비는 제사였던 것으로 보인다. 사투르날리아 기간에는 노예도 자유롭게 주인의 연회에 참석할 수 있으며, 혹은 주인이 거꾸로 노예에게 봉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연령·성별·계급의 구별 없이 연회·경기·행렬 따위가 벌어졌다고 한다. 사투르날리아에는 사람들의 빚은 탕감되고 노예는 자유를 얻는 유대교의 희년 같은 개념이 들어있다. 축일 기간 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서로 선물을 교환하는 습속도 있었는데 이것이 성탄절에 선물을 나누는 풍습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성탄절의 유래와 그 역사가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리처드 로어라는 신부는 '성탄절 준비'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오늘날 교회는 성탄절 기간에 순종, 만남, 성숙 그리고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깊은 공부를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고 어린 아기의 달콤한 출생을 회상하는 것으로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한다. 감상적으로 한껏 고조된 정서들이 실천적 인간관계를 회피하거나 대신하게 만들고 있다. 오늘날의  교회는 우리를 실존적으로 바꾸거나 자신의 에고를 의심하게 할 힘이 거의 없는 개인적 경건으로 그 메시지의 실천적 요구를 피하고 싶은 유혹이 우리 가운데 움트게 한다.

그러나 신앙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를 마주 대하게 하고, 우리를 바꾸어 놓고, 마지막으로 우리를 위로한다.

유치한 아기복음과 아기 예수가 감당하기에는 오늘 이 지구별에서 벌어지는 자연과 인간성의 파괴, 끝을 알 수 없는 인간의 고통, 만연한 불의와 가진 자의 착취가 너무 심하다"

성탄절을 맞이해 이제 낮은 곳으로 임한 예수를 기억할 때다. 생전 예수 주변에는 늘 거지와 병자, 장애인, 과부, 창녀, 아이들이 있었다. 다들 당시의 사회적 소외계층이다.

가장 예수가 관심 있어 했던 사람들이다. 자기가 바로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이라 했다. 예수는 돈이 자신을 자유롭게 한다는 자, 권력에 눈먼 자, 명예에 포로된 자들을 위해 돈과 권력과 명예가 얼마나 헛된 것임을 알려 주러 왔다 했다. 예수는 가난해서, 못 배워서, 장애가 있어서, 외국인이어서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하러 왔다 했다.

그러나 이런 일을 할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가 직접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진정으로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 예수의 뜻을 펼치는 그의 손과 발이 돼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가능한 일들이다.

반짝이는 성탄 트리, 감미로운 캐럴, 멋진 선물 다 좋다. 그러나 낮은 곳에 임한 예수를 생각해서 성탄절 기간만이라도 우리사회의 낮은 곳, 어두운 곳, 아파서 신음하는 곳, 도움이 필요한 곳을 돌아보며 받는 즐거움보다 나누는 기쁨이 모두에게 충만한 성탄절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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