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봉훈 변호사

   
 
     
 
청구권을 보전하기 위해 국가기관의 구제를 기다릴 여유가 없는 경우 권리자가 스스로 사력으로써 구제하는 행위를 자력구제라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문명국가에서는 원칙적으로 자력구제를 인정하지 않으나, 권리 구제를 받기 위해 적법 절차를 밟는 것을 기다리다가는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한 것이 명백하거나 절박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자력구제가 적법한 것으로 인정된다. 형법상으로도 법정절차에 의해 청구권을 보전하기 불능한 경우에 그 청구권의 실행불능 또는 현저한 실행곤란을 피하기 위한 상당한 행위를 자구행위라고 칭해 위법성 조각사유의 하나로 보고 있다.

예를 들어 갑은 병을 상대로 점포 명도청구 소송을 제기해 승소판결을 받은 후 이에 기해 을이 위 점포의 소유주 사이에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서 인도를 받아 적법하게 점유하고 있던 점포에 대해 명도집행을 단행했다.

위 가처분이나 본안판결의 효력은  을에 대해 미칠 수 없는 것임이 분명하다. 이에 을은 강제집행이 일단 종료한 후 2시간 이내에 자력으로 그 점유를 탈환했다.

위 사례에서 법원은 을이 적법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채 즉시 점유를 탈환한 행위를 적법한 자력구제권의 행사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집행기관이 을이 점유하고 있던 점포에 대해 명도집행을 단행한 것은 위법하고, 갑이 이러한 위법한 강제집행에 의해 부동산의 명도를 받는 것은 공권력을 빌려서 상대방의 점유를 침탈한 것이 되기 때문에, 을이 불과 2시간 이내에 자력으로 점유를 탈환한 것은 사회적 상당성이 있는 경우라고 본 것이다.

한편, 여러 명의 채권자들이, 채무자에 대한 물품대금 채권을 다른 채권자들보다 우선적으로 확보할 목적으로, 채무자가 부도를 낸 다음날 새벽에 채무자의 승낙을 받지 아니한 채 채무자의 가구점의 시정장치를 쇠톱으로 절단하고 그곳에 침입해 그 안에 있는 가구들을 화물차에 싣고 가 다른 장소에 옮겨 놓은 사안에서, 법원은 채권자들의 행위를 적법한 자구행위의 요건을 구비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 특수절도죄의 죄책을 인정했다. 이와 같이 자력구제 또는 자구행위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적법성이 인정되고 대부분은 위법한 것으로 평가되므로, 함부로 자력구제를 시도하다가는 곤경을 겪을 수 있음을 유의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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