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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단체 "기념관은 날조" 반대[4·3 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181> 평화기념관 개관 진통 ①
양조훈
입력 2013-01-07 (월) 19:35:48 | 승인 2013-01-07 (월) 19:35:48 | 최종수정 2013-01-07 (월) 19:40:02

   
 
  제주4·3평화기념관 조감도. 2008년 3월 개관을 막기 위한 보수단체들의 움직임도 분주했다.  
 

재향군인회 등 MB정권에 "개관 연기" 진정
한승수 국무총리까지 나서 대책회의 소집


평화기념관 개관 진통 ①
4·3 발발 60주년인 2008년 3월 개관한 제주4·3평화기념관은 4·3의 의미와 아픈 상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역사기념관이다. 이제는 해마다 20만명 이상이 관람하는 다크투어의 명소이자 한국현대사의 대표적인 기념관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 평화기념관이 문을 열기까지에는 남다른 진통이 있었다.

제주시 봉개동에 자리잡은 제주4·3평화공원 조성 사업은 2000년부터 3단계로 추진됐다. 그 가운데 핵심 시설인 4·3평화기념관 건립은 제2단계 사업에 포함되어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착수됐다. 평화기념관은 지상 3층·지하 2층 규모의 건물(연면적 1만1455㎡)로 설계되었고, 전시 시설까지 포함해서 모두 380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이었다.

평화기념관 기본설계는 2002년 4·3평화공원 기본 설계 현상 공모에서 당선된 공간종합건축사무소의 작품에서 제안됐다. 그러나 이 당선작도 건물 외형에 비중을 두었을 뿐, 4·3의 진정성과 역사성을 담는 내용물에 한계가 있고 미흡하다는 지적이 일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04년 10월 4·3평화공원 조성사업 자문위원회(위원장 김정기 전 서원대학교 총장)가 결성됐다. 

이 자문위원회 이외에 그해 11월 다시 실무 전문가들로 평화기념관 전시기획팀이 구성됐다. 전시기획팀에는 박경훈(팀장·제주전통문화연구소장)을 비롯해 강병기(한양대 교수), 김동만(한라대 교수), 박찬식(제주4·3연구소 연구실장), 성완경(인하대 교수) 등 5명이 참여했다.

이 전시기획팀에서 1년 넘게 작업을 해 '제주4·3기념관 전시계획서'가 작성됐다. 기존의 당선작 내용을 대폭 손질한 것이다. 건축 계획과 전시 배치 계획, 전시 동선 등이 크게 변형됐다. 다랑쉬굴 전시실, 백비 시설, 해원의 팽나무 계획 구상도 여기서 나왔다. 특히 턱없이 모자란 4·3 사료 등을 보완하기 위해 그림, 영상매체, 컴퓨터 그래픽 등 멀티미디어 시스템을 적극 활용하는 아트워크 제작안도 도입됐다.

전시기획팀은 2007년 5월 평화기념관 전시연출자문단으로 재편됐다. 기존의 전시기획팀 5명과 민병찬(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양조훈(제주4·3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이동철(제주대 교수), 최선주(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등 4명이 더해져 9명으로 확대된 것이다. 자문단장에는 강병기 교수가 선임되었으나, 기념관 전시물 준비 도중 애석하게 타계하는 바람에 성완경 교수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 자문단은 2008년 3월 기념관 개관 이전까지 모두 12차례 회의를 갖고 전시 사료, 전시 콘텐츠, 전시 연출 등 전반에 대한 검토 작업을 벌였다.

상설전시실은 제1관 도입 부분(역사의 동굴), 제2관 4·3의 전사(前史·흔들리는 섬), 제3관 4·3 봉기(바람타는 섬), 제4관 학살(불타는 섬), 제5관 후유증과 진상규명 역사(흐르는 섬), 제6관 새로운 시작으로 연출됐고, 다랑쉬굴 참상이 재연된 특별전시관 등이 별도로 준비됐다. 전시관 설명 패널 문안은 4·3진상조사보고서를 토대로 작성한다는 원칙이 정해져 필자와 김종민 전문위원이 주로 작성했다.

아트워크 작품 중에는 박재동 화백의 애니메이션 '3·1절 기념대회 발포상황', 강요배 화백의 회화 '제주도민의 5·10', 김창경 화백의 미디어 아트 '한라산의 평화', 오석훈 화백의 저부조 '제주 저항의 역사', 이가경 화백의 애니메이션 '불타는 섬', 고길천 화백의 조소 '죽음의 섬' 등이 인상적이었다.

전시내용을 연출하는 과정에서는 수정이 거듭됐다. 전시의 눈높이를 중학생 수준에 맞춘다는 원칙이 정해지면서 내용을 보다 쉽게 풀어쓰는 작업이 계속됐고, 시각적 효과를 살리는데 비중을 두었다. 작업은 새벽까지 이어져 밤을 새는 날도 잦았다. 그만큼 역사적인 작업이란 소명의식과 열정들이 있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을 계기로 보수단체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2008년 2월 재향군인회, 뉴라이트 전국연합 등 94개 보수단체로 결성된 '대한민국 국가정체성회복국민협의회'가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에 4·3진상조사보고서 수정과 4·3평화기념관 개관 연기를 골자로 한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 진정서에는 "4·3평화기념관은 날조·왜곡된 4·3진상조사보고서를 근거로 군경은 악으로, 폭도들은 봉기자로 미화하는 등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는 내용들을 전시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 선봉에 재향군인회 박세직 회장이 나섰다. 육군 소장 출신인 그는 총무처장관·체육부장관·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안기부장·서울시장과 국회의원을 두루 거친 거물이었다. 그 무렵에는 보수정권을 재탈환하는데 기여한 공로로 기세가 등등했다. 청와대와 총리실 등에 바로 전화를 거는 몇 안되는 인물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지 열흘도 안된 3월5일, 한승수 국무총리가 원세훈 행정안전부장관과 박성일 4·3지원단장을 호출했다. 놀랍게도 재향군인회 등에서 제기한 4·3평화기념관 개관 연기 주장 등에 관해 협의하기 위해서였다.

☞다음회는 '평화기념관 개관 진통' 제2편


양조훈  yjh43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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