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이 제주대학교 병원 심장내과 교수·논설위원

   
 
     
 
살림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은 이해할 것이다. 냉장고는, 특히 냉동실은 블랙홀이다. 한번 냉동실에 들어간 음식은 좀처럼 나올 수 없다. 그것이 홈쇼핑에서, 인터넷 쇼핑에서 냉동실을 정리해 준다는 마법의 수납용기를 그토록 열심히 팔아대는 이유이다. 홀린 듯이 TV 화면을 들여다보며 몇 번이나 수화기를 들었다가 놓고 이메일함의 쇼핑몰 메일을 차마 지우지 못하고 열어보다가 수납용기 구매를 포기하게 되는 것은 '그래도 역시 소용없지 않을까' 하는 자괴감 때문이다.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식재료를 사고 냉장고 안에 저장하지만, 많은 경우 일부가 남게 되고 냉동실 한 구석에 처박히게 되면 영원히 기억에서 멀어지게 된다. 세월이 흘러 어느 날 냉동실에 자리가 없어서 하나 둘씩 꺼내다 보면 유통기한이 2년쯤 지난 냉동식품과 언제 얼렸는지 알 수 없는 식빵조각을 발견하게 되고 얕은 한숨과 함께 다시 냉장고 안으로 밀어 넣는다.

직장 생활도 열심히 하고 엄마 역할도 열심히 하며 살림도 야무지게 잘한다면 정말 좋겠지만, 살림은 이미 포기한지 오래다. 두 딸에게 "엄마가 만들어 준 음식 중에 가장 맛있는 게 뭐야?" 라고 물었다가 '라면'이라는 큰 딸의 대답에 가슴이 무너지고 엄마를 배려하는 둘째 딸의 "나는 찐만두"라는 말에 요리의 길이 얼마나 멀고 험한지 알았다.

이런 빵점 주부가 오밤중에 식재료 대청소를 하게 만든 대사건이 있었으니 이름 하여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 수련의 시절 서울에서 살 때는 음식물 쓰레기봉투가 있었고 음식물 쓰레기 처리에 대한 여러 가지 노하우를 인터넷에서 열심히 검색해 가능한 한 냄새가 나지 않으면서 부피를 적게 만들려고 노력했었지만, 고향에 오고 난 이후 이러한 기억은 머리에서 지워졌다. 오밤중에 산발한 머리에 패딩점퍼를 걸치고 검은 비닐봉지에 질척한 음식물 쓰레기를 넣고 물을 뚝뚝 흘리며 동네를 질주해 가장 가까운 클린하우스 음식물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투척한 후 축축한 손을 축 늘어뜨리고 다시 집으로 질주해 전문가의 솜씨로 손을 씻는 것이 일반적인 음식물 쓰레기 처리 방식이었다. 그러나 올해 1일을 기해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가 실시돼 개별개량 방식이나 음식물 전용 봉투를 이용해야만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수 있게 되었다. 안 해본 것도 아니고 필요성도 절감하면서도 일단 공짜로 버릴 수 있던 쓰레기 처리에 비용이 든다는 사실이 그냥 불편하기도 했고 미리미리 봉투를 준비하지 못했던 터라 일단 급한 대로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물부터 버리자는 일념 하에 열심히 청소를 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원하던 바를 이뤘으나 다음 날 몸살로 앓아누우면서 간밤에 한 일을 하루 종일 끙끙 앓으면서 반성하게 됐다. 

제주시 생활환경과에 따르면 지난해 제주시에서 발생한 음식물 쓰레기가 5만2195t 이었고 이로 인한 처리비용이 64억 원이 들었으나 세입은 8억 원에 불과했다고 한다. 음식물 쓰레기 1㎏을 처리하는데 드는 비용은 123원 수준이나 조례에서 정한 수수료 요금은 ㎏당 22원으로 실제보다 싼 수수료를 매기고 있다고 한다. 현재 음식물 전용봉투의 가격은 2ℓ 36원, 3ℓ 54원, 5ℓ 90원이다. 실제로 음식물 전용봉투를 사용해 보니 14일 동안 2ℓ짜리를 4장 사용하게 되었고 아마도 한 달이면 10장 전후를 사용하게 될 듯하다. 대략 360원에서 540원 정도니까 크게 부담되는 금액은 아닌 듯 하고 쓰레기의 수분을 제거하는 등 약간의 노력이 더해진다면 비용은 조금 더 절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 시작은 약간의 저항감이 느껴지겠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불필요한 낭비를 줄일 수 있으니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한다.

그런데 여름에 수박을 어떻게 먹지. 속껍질까지 박박 긁어먹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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