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185> 산고 심한 4·3재단 출범 ②

   
 
   2009년 10월 15일 제주4·3평화재단 장정언 이사장(왼쪽) 취임식. 김태환 도지사, 김용하 도의회의장, 양성언 교육감, 홍성수 유족회장을 비롯한 각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계속 고사…'삼십고초려' 끝에 겨우 수락
4·3해결 구심체로서 역할 위한 과제 많아

산고 심한 4·3재단 출범 ②
필자가 제주4·3평화재단 상임이사 부임 4개월여만인 2009년 7월초 뜻밖에도 환경부지사 내정자로 '소환' 받게 됐다고 표현한데에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 나에게 부지사를 맡아달라고 한 김태환 도지사는 당시 강정 해군기지문제로 주민소환 투표란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있었다. 이런 주민소환 정국이 결국 나까지 '소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2006년 역사적인 제주특별자치도 출범의 선봉에 섰던 김 지사는 무엇보다 중앙권한 지방이양이란 제도 개선과 국비 확보 등 중앙정부와의 절충에 비중을 두었다. 행정부지사만이 아니라 정무 역할도 맡는 환경부지사도 행정고시 출신인 정통 중앙관료를 발탁했다. 그런데 어느날 도민사회와의 소통문제가 발생되고, 급기야 주민소환 상황에 이르자 난마와 같이 얽힌 현안을 풀어줄 제주출신 부지사 임명을 고려한 듯하다.

사실 나는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에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언젠가 김 지사를 서울에서 만나 군사기지를 둘러싼 제주도의 역사적인 수난사와 현재의 국제적 주변 환경을 이야기하면서 신중을 기해달라는 의견을 개진한 적도 있다. 아마도 나를 선택할 때에는 그런 측면까지 고려했지 않았나 여겨진다.

나는 뜻밖의 제안을 받고 당황했다. 현안을 해결할 자신도 없거니와 출범과정에서 삐걱거렸던 4·3평화재단을 겨우 수습하는 단계에서 내가 자리를 옮긴다는 생각을 도저히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정중히 거절했다. 대신 부지사 후보로 몇 분을 추천했다. 그러나 김 지사는 이 제안을 물리지 않았다. 3일째 되던 날 나는 결국 승낙하고 말았다.

예상했던 대로 4·3진영과 일부 언론의 질책이 잇따랐다. 한 지역일간지는 사설까지 싣고 "4·3평화재단 정상화 첩첩산중"이라고 비판했다. 제주도의회 환경부지사 청문회 과정에서 한 도의원이 "4·3평화재단 상임이사직을 왜 박차고 나왔느냐"고 신랄하게 따져서 "박차고 나오지 않았다"고 해명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부지사에 부임하자마자 우선 두가지 점에 역점을 뒀다. 엉킨 해군기지 실타래를 하나씩 푸는 것과 4·3평화재단의 정상화 방안 모색이었다.

역시 해군기지는 어려운 문제였다. 일단 강정 주민들을 만나는 일과 그동안의 과정을 검토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주민투표 방안도 검토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서울에 몇번 다녀오면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온도 차가 크다는 것을 실감했다. 겨우 한 일이라곤 정부지원을 법으로 보장하도록 법 개정을 하는 것, 극단적 충돌을 막기 위해 애를 쓴 정도였다. 끝내 매끄럽게 마무리 짓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4·3평화재단 정상화의 요체는 행정부지사가 맡고 있는 이사장직을 민간인으로 교체하는데 있다고 봤다. 먼저 '행정부지사'가 당연직 이사로 된 재단 정관을 '도지사가 추천하는 부지사'로 개정하는 작업을 추진했다. 그래서 환경부지사인 내가 당연직 이사로 들어가서 후임 이사장 물색작업을 벌였다.

각계의 여론 수렴 결과, 제주도의회 의장과 국회의원을 지낸 장정언 의장이 적임자라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그래서 유족회, 4·3관련단체 대표들과 협의하며 장 의장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한사코 고사했다. 유비가 제갈공명을 얻기 위해 세번 찾아갔다는 데서 유래된 '삼고초려(三顧草廬)'란 말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장 의장을 재단 이사장으로 모시기 위해 '삼십고초려'를 했다. 정성과 예의를 다했지만 그는 자신이 나설 수 없다고 끝내 답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재단 이사회에서 먼저 이사장으로 선출하고, 최후 통첩하는 방안까지 동원해 겨우 수락을 받아냈다.

물론 그후 여러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4·3평화재단은 일단 정상화의 길로 들어섰다. 4·3관련단체들이 동참했고, 상임이사에 이성찬 전 4·3유족회장이 선임됐다. 또한 공무원과 민간인이 참여하는 민관 협력체제의 사무처 기틀도 마련됐다. 그럼에도 4·3평화재단이 제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개선해야 될 점이 많았다.

필자는 환경부지사에서 물러난 후인 2010년 12월 열린 '4·3평화재단 활성화 방안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통해 다음 다섯가지를 제안한 바 있다.

첫째, 추모기념일 제정, 보상 및 생계비 지원, 재단 기금 확보, 평화공원 3단계 사업, 희생자 추가 신고기간 설정 등 당면 과제에 대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둘째, 재단 사업은 분야별 단기, 중기, 장기 플랜을 세워 당장 추진할 사업, 연차적으로 추진할 사업, 장차 추진할 사업 등으로 구분하는 로드맵이 필요하다.

셋째, 재단은 정부, 여야, 제주도, 도의회, 4·3단체, 국내외 평화단체와의 네트워크를 이뤄 현안이 발생했을 때 4·3의 구심체로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넷째, 전문가의 자문을 받기 위해 '평화공원 운영위원회', '진상조사 및 학술문화위원회'같은 특별위원회 운영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민관 협력 체제를 실현하기 위해 현재 공무원 중심의 조직체계를 재편해 민간 전문가와 공무원 비율을 50:50으로 구성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다음편은 '4·3영령과의 만남'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