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영 제주여성인력개발센터 관장·논설위원

   
 
     
 
지난 달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6살짜리 조카가 스케치북을 들이댔다. 한 장 가득히 그려 넣은 인형을 가리키며 "크리스마스 날 이거 받고 싶어요"라고 한다. 종교를 떠나 6살 조카에겐 '당당히' 선물을 요구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는 아주 '소중한' 날이다.

그리고 한참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는 밸런타인데이·화이트데이·빼빼로데이 등 '기념일'들이 중요하다. 기성세대가 '상술에 의해 만들어진 국적불명의 기념일'이라고 치부해도 그들에겐 누군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소중한 날이다.

애들을 '탓하는' 기성세대도 비슷하다. 해마다 돌아오는 생일, 주민등록증을 처음 받아든 날, 운전면허증을 취득한 날, 첫 출근일, 결혼기념일, 첫아이 탄생일 등 365개의 날 중에 몇몇에 나름대로의 의미를 담아 기념하고 정을 나누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의 물질만능주의 세태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단적인 예가 지난 1월 7일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가 발표한 청소년 윤리의식 설문조사 결과다. "10억원이 생긴다면 1년간 감옥행도 무릅쓰겠다"에 초등학생의 12%가 동의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중학생은 28%, 고등학생은 44%가 긍정적으로 답했다고 한다. 너무나 일찍 물질만능주의에 젖어버린 청소년들의 사고방식에 저절로 '썩소'가 나올 판이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이 애들에게만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기성세대의 거울이 청소년들이기에 책임이 크다면 어른들이다. 사실이 그렇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을 펼치면 정치인의 수억원 뇌물수수 기사, TV를 켜면 가족의 목숨과도 바꾸는 보험사기 뉴스 등 우리 사회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소식들로 넘쳐난다.

아울러 '우리를 잃어버리고 있는' 현 세태에도 책임이 있다고 본다. 핵가족 시대와 저출산 시대의 도래, 1등 지상주의에 따른 학원 열풍과 컴퓨터 등 혼자놀기 문화 확산 등으로 애들이 '혼자'임을 자각하면서 금권에 기대려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즉 어려울 때 스스럼없이 기댈 수 있는 그 누군가가 없기 때문에 '대안'으로 돈을 선택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어른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가 점점 사라지고 개인만이 존재하는 느낌이다.  내가 소중한 만큼 남도 소중한데, 나만 소중하다. 밭을 사도 내가 사야하고 남이 사면 안 된다. 남이 아니라 사촌이 사도 안 된다.

오죽했으면 우리의 '미풍양속'에서 비롯된 좋은 뜻인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도 나쁜 뜻으로 바꿔버릴 정도다. 이 속담은 원래 우리 민족이 정이 많은 농경문화민족인지라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파서라도 변을 보아 거름을 만들어서라도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에서 쓰였는데 일제강점에 의미가 와전, 그 반대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또 하나 더 어른들의 잘못은 질투와 시기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말까지 있다. 남이 잘되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는 얘기다. 특히 우리 제주지역의 배타성과 폐쇄성을 지적하는 구절로 종종 인용되곤 한다. 이 표현이 결코 유쾌하진 않지만 100%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는 게 오늘날 제주의 현실이다. 전국 최고 수준의 무고(誣告)사건 비율이고 보니 뭐라고 변명하기가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제민일보가 2013년 연중 캠페인으로 'WeLove(We♥)'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어 큰 박수를 보낸다. 갈등과 반목, 질시와 대립의 골이 깊은 제주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의식전환 운동이라 여겨진다.

칭찬은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기쁜 선물이다. 마음의 기쁨은 물론 자존감도 높여주는 보약이다. 그리고 보면 우리에게 소중한 날은 긍정적 사고로 남을 칭찬해줄 수 있는 오늘 이 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의미 없는 뒷담화는 버리고 '하루에 적어도 한번 칭찬하기' 등을 실천해 '물질이 아니라 사람이 소중한 제주사회'를 만들어보자. 칭찬은 소중한 오늘의 의미 있는 디자인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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