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학자들을 중심으로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만들자는 논의가 시작된 후 10여년이 흐른 지금, "평화의 섬 제주"는 화두의 수준을 넘어서 구체화되고 있다. 특히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하여 제주는 백두산과 더불어 통일의 상징으로 부각되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문이 기정사실처럼 여겨지면서 이를 기회로 세계에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각인시키고자 하는 도당국의 노력이 돋보인다.

 이미 도당국은 북쪽에 국제적인 평화기구와 연구소의 설립에 협력을 요청한 상태이며, 성급한 듯도 하지만 이번 김대중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전후하여 정부가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제정하여 온 세계에 선포한다는 등 구체적 시기와 방법까지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만들자는 것은 어느 사이에 도민의 공감대가 이뤄졌다고 본다. 이제 평화의 섬은 이어도를 선취하는 제주의 비전이 되었다. 그래서 국방부가 모슬포 훈련소 자리에 전쟁박물관을 짓겠다고 하는 계획도 송악산의 일제 비행장 유적과 인공동굴 등과 연계하여 평화박물관으로 변경하라는 주문이 자연스럽게 들리고, 모슬포에 군사비행장을 설치하겠다는 구상은 발표되자마자 도민의 저항에 밀려 백지화되고 말았다. 심지어는 세계태권도공원 못지 않게 지역경제에 막대한 이득이 될 수도 있고 관광은 물론 관련학과의 비약적 발전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인공위성발사장 건설도 최적의 장소요 평화적인 프로젝트일 수도 있지만 평화의 섬의 이미지와 관련하여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로 간단하게 물리치고 말았다.

 그러나 평화란 무엇인가? 전쟁이나 분쟁이 없는 자유로운 상태라는 부정적 정의로는 시공을 초월한 인류의 염원으로서의 의미를 모두 담아내지 못함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평화의 긍정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곧 조화(harmony)이다.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자리잡음으로써 질서가 이루어진 조화로운 상태를 평화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에서는 참 평화를 위해서 네 가지 조화를 요구한다. 곧 피조물로서의 창조주와의 조화, 대자연과의 조화, 영혼과 육체의 조화, 그리고 인간과 인간과의 조화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 조화를 깨뜨리는 것을 죄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평화란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하느님 나라"의 또 다른 이름인 것이다.

 그러기에 필자는 이 고장을 평화의 섬으로 실현하는 과제에 관심이 있는 도민의 한 사람이라는 정도가 아니라, 천주교 성직자의 한 사람으로서 전적으로 이 과제를 위해 투신한 사람인 셈이다. 그래서 더욱 묻지 않을 수 없다. 평화의 섬을 건설하기 위해 오픈 카지노라는 대단위 도박장을, 도민은 물론 전국민을 상대로 우리의 어머니와 같은 이 제주 땅에 상처를 입혀가며(메가 리조트) 만들어줘야 하는지를 말이다.

 혹시 한 해에 총매출액의 10%인 700억에서 1000억이라는 막대한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헛된 욕망에 눈이 어두워져서 마음의 평화를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행여나 그 돈을 벌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돈이 수많은 가정과 인격을 파괴하고 얻은 대가라면 단호히 물리쳐야 할 악마의 선물임이 분명하지 않은가? 적어도 우리가 평화의 섬을 지향한다면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우리 도민이든 그 누구라도 사행심에 사로잡히게 하여 거기서 떨어지는 떡고물로 삶을 즐겨 볼 생각은 말아야 한다.

 혹시 누가 라스베이거스처럼 사막에 자기 돈을 투자하여 카지노를 하겠다면, 저 먼 바다에 대형선박을 띄워놓고 도박장으로 돈을 벌어보겠다면 대부분 상관하지 않을지 모르나 그래도 필자는 말리고 싶다. 더구나 평화의 섬에서 우리와 우리 자손들을 상대로 하겠다면 목숨을 걸고 막아야하지 않겠는가!<임문철·천주교서문성당 주임신부>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