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준 연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논설위원

   
 
     
 
스위스 제네바 근처,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선 50~175m 지하에 둘레가 27㎞에 달하는 원형터널 안에 LHC(거대 강입자 가속기)라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입자 가속기가 있다.

CERN(유럽 핵연구기구)에서 우리나라를 포함해 100여개가 넘는 나라로부터 1만명이 넘는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참여해 10여년에 걸친 공사 끝에 완성했으며 지난 2008년 9월에 첫 시운전을 했다. 그리고 지난해 7월경 이 입자가속기에서 그토록 입자물리학자들이 고대하던 힉스입자가 발견된 것 같다는 뉴스가 발표됐고 1년 예정으로 이를 확인하는 실험이 계속 진행 중이다.

만약 이 발견이 사실이라면 이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네 가지 기본적인 힘 중에 빛이 전달하는 전자기력과 핵분열을 야기시키는 약한 핵력이 서로 연결돼 있음을 확증해주는 마지막 고리이다. 그리고 이는 나머지 두 힘, 즉 중력과 강한 핵력까지 연결시키는 대통일 이론에 한 발짝 더 다가섰음을 의미한다.

'세상만물을 이루는 근본적인 물질은 무엇이고 이들이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우리의 우주는 영원한 것인가, 아니라면 그 시작과 끝은 어떻게 되는가' 등등의 질문들은 유사 이래 인류가 늘 가져왔던 것이며 종교와 철학을 통해 이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해왔다.

14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일어난 문예부흥, 즉 르네상스 시대에서 비롯된 이성에 대한 믿음과 논리적인 사고의 추구, 그리고 망원경의 발달로 인한 천체관측의 발전을 토대로 이러한 궁극적인 질문에 답하고자 하는 물리학이 시작됐다.

만약 우주에 시작점, 즉 빅뱅이 있었다면 입자물리학이 이야기해주는 것은, 우주가 탄생한 직후(초 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이다. 대략 137억년에 이르는 우주의 역사를 시작점만 빼고는 그 모두를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가장 근본적인 물질들인 전자·쿼크 따위가 힘을 전달하는 빛, 중력자 등을 주고받으며 그에 따라 세상만물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기본적인 힘이라는 것이 사실은 대칭성이라는 매혹적인 근본원리에 의해 생겨난 것임을 이해하고 있다.

그럼 왜 아직도 10조원을 투자해서 LHC를 만들어 실험을 하고 COBE와 WMAP이라는 인공위성을 띄워 우주관측을 하는 것일까.

왜냐하면 자연에 대한 이 모든 심오한 이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주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에너지의 어느 정도를 이해하는지 알고 있는가. 단지 4% 정도다. 이 4%는 이 우주에 존재하는 별·블랙홀·성간물질 들을 모두 포함한 것이다. 나머지 96%중 23%정도는 어떤 종류의 기본 입자로 이뤄졌는지 알 수 없어 암흑물질이라 불리는 것이며 73%정도는 존재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어떤 종류의 에너지인지 몰라서 암흑에너지라 불리는 것으로 이뤄져 있다.

이들을 이해할 수 있으면 아마도 우주가 어떻게 시작했고 그 운명은 어떻게 될지 알게 될지도 모른다. 또한 앞에서 얘기한 자연계의 네 가지 기본적인 힘들이 사실은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가장 근원적인 대칭성의 지배를 받는 한 가지 힘으로 기술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물리학의 발전에 우리나라는 어느 정도 공헌하고 있을까. 비록 경제의 발전에 따라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이는 출발점이 너무나 늦었기 때문이다. 압축 성장에 의해 경제규모는 세계 10위권으로 도약했지만 자연과학은 지식이 축적되고 경험이 필요한 분야라 그리 쉽게 성장할 수 없다.

예전에 대학교 때 교수님께서 일본이 자연과학을 수용한지 3세대 만에 첫 노벨상을 배출했다는 얘기를 해줬다. 물론 이는 우리나라에서는 우리가 바로 세 번째 세대니까 열심히 해보라는 격려 차원의 말씀이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지금 자라나는 세대가 그 세 번째 세대인 듯하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내가 받은 것보다 업그레이드된 교육을 해주는 것이 우리 세대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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