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미 경제부장

지난해 4월로 기억된다. 한 겨울 크랭크인 이후 제작비 등의 문제로 고전을 이어가던 오 멸 감독과 만났다. 그 때 까지 '꿀꿀꿀'이란 가제로 불렸던 영화에 오 감독은 "'지슬'로 제목을 바꿀 생각"이라고 운을 뗐다. 집에 두고 온 돼지를 걱정하던 순박한 섬 사람들의 시선을 결국은 모두가 피해자가 되고 만 운명적 사건의 참상을 담백하게 그려내겠다는 의지의 발로였다. 먹을 것이 여의치 않았던 상황에 '지슬', 굳이 표준어로 고쳐 써 감자는 삶을 잇게 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고스란히 섬 땅을 상징한다. 섬 땅 사람들의 아팠던 과거와 감춰졌던 진실을 캐내고 오늘과 미래를 연결하는 새로운 싹을 틔우고 모든 것이 한 주먹 '지슬'에 담았다. 사실 제주에서의 시사회에서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어떤 이는 묵직하게 가슴을 짓누르는 무언가로 자리를 뜰 수 없었다는 감흥을 전했는가 하면 혹자는 제주의 아픈 상처를 너무 심미적으로 그려낸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현지시간으로 지난달 26일 영화 '지슬'은 전세계 독립영화계에서 정평난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4·3 당시 이유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한 제사를 지내는 심정으로 작품을 만들었다"던 오 감독의 진정성이 인정을 받는 순간이었다. "수상의 영광을 제주도민과 나누고 싶다"는 말을 기화로 여기저기 변화가 시작됐다. 제작당시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았던 제주특별자치도가 움직이고, 몇 차례 논란 끝에 속앓이로 남았던 독립영화전용관에 대한 목소리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하나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쉽다. 오 감독이 말했듯 제주 안의 비극으로 치부되던 '4·3'을 미국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지슬'수상과 함께 상영에 대한 소식이 전해지며 일각에서는 해묵은 색깔 논란도 시작됐다. 모처럼 '4·3'을 섬 밖은 물론이고 바다 건너와 공유할 수 있는 기회이자 다음 세대로 전할 방법 중 하나를 찾은 셈이지만 어찌된 셈인지 그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미뤄진 채다. 지슬의 제주 개봉일은 3월 1일이다.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건 1947년 그날 관덕정에서의 일이 '4·3'이라는 운명적 사건의 도화선이 됐다. 우리가 '지슬'을 통해 봐야 할 것은 영화 하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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