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선 시인·논설위원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 속에 수많은 관객들이 줄지어 섰다. 얼마 전 미국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이라는 낭보를 제주에 안겨준 4·3영화 '지슬'이 상영된 에클스 극장 앞 풍경이다. 감자 한 알이 '4·3'을 세계에 알렸다.

"전쟁의 불합리성을 세심하고 절묘하게 그려낸 보기 드문 작품,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는 평을 받으며 국내·외 언론 역시 놀라워했던 '지슬'. 이름 그대로 팍팍한 제주 땅에서 자생한 감자처럼, 제주에서 생산해낸 영화. 단번에 세계에 내보내며 4·3의 대중화에 기여한 '사건'이 됐다. 내달 1일부터 제주에서도 개봉된다는 소식이다.

참혹한 희망의 영화 한편이 세계인의 가슴을 예리하게 건드렸다. 예술의 힘이다. 한편의 문학 또한 그러한 힘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올해 그는 89세. 지금도 소설을 쓴다. 이 저력의 작가는 바로 제주도를 고향으로 둔 재일작가 김석범이다. 그의 생의 대부분은 4·3 대하소설 「화산도」에 바쳐졌다. 꼬박 21년의 노역. "나의 고향땅에 취재조차 하러가지 못한 채 집필을 계속한 것이 가장 괴로웠다. 상상력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화산도」 를 완결하며 털어놓은 그의 고백이었다.

「화산도」는 편견 없이 봐야 한다. "「화산도」는 단지 4·3소설이 아니다. 풍속과 풍경까지 건져 올려 생생하게 고향땅을 재생시킨 소설"이다. 4·3운동을 하는 재일동포들, 1988년 동경에서 처음 열렸던 4·3 40주년도 「화산도」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은 「화산도」에서 제주만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존엄·평화에 관한 철학까지 보았다.

하지만 한 인간의 필생의 역작인 이 대하소설은 아쉽게도 우리말로 완독하지 못한다. 한국어로 완역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76년 집필을 시작한 작가는 1997년 마지막권인 제7권을 단행본으로 내면서 집필을 끝냈다. 벌써 이 책의 1부가 한국에서 출간된 지 25년이 흘렀다. 기다리던 독자들도 지쳤으리. 완역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 원고지 2만수천장의 방대한 양인 「화산도」의 까다로운 번역과 예산 탓이다.

일본의 오사라기지로상을 수상할 때, 작가가 "심사위원 여러분도 이 책을 다 읽었는지"했다던 대규모의
「화산도」다. 「화산도」 는 제주도를 상징한 작품이 됐다.

일본에서는 이미 2006년 '김석범의 「화산도」 읽기 모임'이 생겼고, 이후 김석범 문학 읽기 모임이 소규모로 이뤄지고 있다. 「화산도」 조명도 일본에서 일찍 시작됐다. 이제 우리도 「화산도」를 조명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우리는 늘 늦게야 우리 것의 위대함을 안다. 우리와 너무 가까이 있어서 보지 못하는 것이 많다. 우리의 빈약한 안목 탓이다. 문화예술에 대한 열악한 관심 탓이다. 죽죽 포장도로를 뽑아내는 건설 공사에, 관광지의 불필요한 데크나 오름 위의 번뜩이는 시설물엔 예산을 쏟아 부으면서 문화예술엔 짜다.

"기억이 말살당한데는 역사가 없다"는 작가 김석범. 일본어로 쓰지만 작가는 일본 문단하고 상관없이 소설을 써온 사람이다.

이제 우리 스스로 소중한 것을 놓치는 우매함을 범하지 말자. 문화의 힘없이 풍광만 좋다하지 않는다.

이미 일본에서는 유수의 출판사에서 「화산도」 재출간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화산도」가 완역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지금도 4·3을 살고 있는 노작가의 대하 앞에 이제 우리가 화답할 차례 아닌가. 4·3의 세계화를 말한다.

예술은 훌륭한 매개다. 「화산도」의 완역은 한국 문학계의 일대 분기점이 되리라 생각한다. 4·3사건 65주년이다. 우리도 이제 우리의 눈으로 객관화된 눈으로, 작품을 작품으로 볼 수 있는 역량이 되지 않았는가. 감자의 힘처럼, 「화산도」의 완역을 기다린다. 아니다. 우리 스스로 이 소설의 완역에 힘을 모으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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