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베트남 국제평화문학교류>

▲ 빈호아 마을 어린이들의 모습.

제주작가회의 국제교류단
지난달 꽝아이성 등 방문
예술 통한 평화 공감대 확인

한국현대사에 지울 수 없는 비극인 4·3의 제주, 그리고 베트남전 당시 최대의 민간인 희생을 불러왔던 밀라이(베트남 현지지명 ; 썬미Sonmy마을)학살이 발생했던 꽝아이성과의 문화예술교류는 지난 2007년 이후 지속되어 왔다.

지난 1월 21일~27일 사이에 진행된 제주작가회의 국제교류사업단이 주관한 제주-베트남 국제평화문학교류는 그 연장선상에서 호치민시·꽝아이성 등지에서 양 지역 작가·예술가 등과 만나 여러 가지 교류 행사를 치르면서 다시금 양 지역 간의 이해와 소통의 공감대를 확산하는데 소기의 성과를 얻었다.

특히, 이번 교류 방문 중에는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가 극심하여 아직도 한국군 증오비가 서있는 꽝아이성 빈호아 마을 인민위원회와 빈호아 초등학교 등을 한국인으로는 처음 공식적인 방문을 하고 돌아오는 민간외교 차원에서의 소득도 있었다.

빈호아마을에 세워진 한국군 증오비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지난 2007년이었다.

그해, 서울에서 열린 국제문학행사에 참가했던 베트남 작가단이 주최 측의 배려로 제주를 찾아오게 된다. 그중에 역시 참전 전투원이자 당시 남부베트남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인 찜짱 시인이 있었다. (2011년 작고)

그는 마침 해외 예술교류의 계획을 갖고 있던 당시 제주민예총 지회장 김수열 시인으로부터 문학예술교류 사업이 가능한 대상지역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리고 찜짱 시인은 귀국하자마자, 사선을 함께 넘나들었던 전우이자 그의 문학적 동지인 베트남 국민시인 탄타오 선생의 고향 꽝아이성을 우리 측에 강력히 추천했는데, 빈호아마을은 바로 그 꽝아이성에 있었다.

1966년 12월, 남녀노소 통틀어 430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한국 청룡부대에 의해 목숨을 잃은 학살의 역사를 새겨 놓은 비석이 서있는 참극의 마을.

일행들과 다시 빈호아 마을의 한국군 증오비 앞에 선 이날은 맑게 갠 하늘빛이 유난히 푸르렀다. 야트막한 언덕 위의 비석은 늘 그렇듯 묵묵하게 일행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매번 느끼는 무겁고 죄스런 발걸음, 이 작은마을을 처음 방문한 동료작가들은 오늘 무엇을 보고 느낄 것인지. 그리 오래된 이야기도 아니건만 왜 이 비극은 아직도 꽁꽁 감추어져 있는 것인지. 왜 이 자리에 오면 제주섬에 불어 닥쳤던 광풍, 4·3의 비극이 생각나는지. 베트남으로 떠나오면서부터 마음속에 여미어두었던 생각들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날의 증오비 참배는 필자가 경험한 그 이전의 방문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마을주민들이 비석주변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모습도 놀라웠지만, 희생자 유족들이 우리 일행을 맞아 같이 향을 피우고, 꽃을 제단에 바치는 등 참배가 진행되는 전 과정에 함께 했다는 사실이었다. 마침내 그들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는 것일까, 반가움과 고마움 알 수 없는 뜨거운 감정이 마구 뒤섞이며 자꾸만 마음이 뭉클해졌다.

빈호아마을 인민위원회도 찾았다. 물론 한국인으로, 더구나 공식적으로 첫 방문이었다.

마을 인민위원장 (우리의 읍장)의 빈호아마을과 제주는 앞으로 영원한 친구가 됐다 라는 환영인사, 한림화 교류단장의 답사가 오고가는 중에 빈호아 초등학교 운동장에 전교생들이 모여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는 전갈이 왔다. 땡볕에 서있을 아이들을 떠올리며 서둘러 학교로 발길을 옮겼다.

제주도축구협회가 협찬한 축구공 스무 개, 소정의 기념품 등 제주에서부터 준비해 간 물품들 외에도, 필자가 함께 활동하고 있는 한국과 베트남을 생각하는 시민모임에서 준비한 희생자 유자녀들에게 전달할 장학금과 전교생에게 고루 나누어 줄 스케치북, 의류 등 수십 박스의 선물이 운동장에 차곡차곡 쌓이는 동안, 필자가 그토록 만나보기를 희망했던 400명 빈호아의 아이들과 마침내 얼굴을 마주했다.

빈호아 아이들의 환하고 천진난만한 미소는, 여정의 피로는 물론 증오비 참배 과정에서 무거워졌던 일행들의 마음을 단숨에 녹여주었다. 많은 학부모들도 함께 한 자리, 분에 넘치는 환대와 박수가 이어졌다.

이 아이들의 오늘의 만남을 얼마나 오래 기억할지, 그 의미를 어느 정도나 헤아릴 수 있을 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작은 발걸음만으로도 진정한 화해와 소통의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마주보며 웃어주고, 악수를 청하면 고사리손을 내밀어 수줍게 인사를 나누고 뛰어가는 아이들의 미소 속에서 베트남의 내일을 봤다. 빈호아의 아이들아, 너희는 그 스케치 북에 두 번 다시 전쟁의 그림을 그리지 말아라. 푸르게 열린 하늘처럼 희망과 평화만을 꿈꾸며 자라거라. 먼나라 한국의 제주섬에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도 가끔은 떠올리거라. <이종형 시인·제주문학의 집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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