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수 이중섭미술관 명예관장·논설위원

   
 
     
 
최근 조선일보 조용현살롱에서 「방외지사의섬-제주도」를 흥미 있게 읽었다.  

방외란 사전적 의미로는 속된 세상일에서 벗어난 고결한 사람이 되지만 일반적으로는 은둔의 사람이란 뜻을 지니고 홀로 묻혀 사는 사람을 일컫는다. 

제주도가 속세를 떠난 은둔의 땅이 되고 있다는 살롱의 내용은 좀 더 구체적으로 예술가들의 은신처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제주도가 도시에서 느끼지 못하는 해방감과 휴식을 주기 때문으로 청년세대와 예술가들이 좋아하게 됐고 지금은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제주는 올 때마다 변화의속도가 느껴진다. 젊은이들이나 예술가들의 취향에 호응이라도 하듯 카페와 같은 휴식 공간이 늘고 있는 것도 엿볼 수 있다 

김포공항에서부터 제주로 가는 인파는 줄을 잇는데 신기하게도 제주에 오면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스며들었는지 제주는 여전히 한가한 분위기 그대로다. 교외는 물론이고 제주시나 서귀포시도 군중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의 모습은 좀처럼 볼 수가 없다.

아마도 이런 분위기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요인이 아닐까도 생각된다. '대도시의 생활 공간에서 벗어나는 것만큼 해방감을 주는 것은 없다'고 하는 말을 떠올려보면 말이다 

제주를 지상의 유토피아로  알고 처음 찾아온 예술가는 이중섭이었다.  신산한 전쟁 통에 그가 심신의 휴식을 위해 식솔을 이끌고 찾아온 곳이 서귀포였다.   '길 떠나는 가족', 서귀포의 환상은 그의 심회를 담은 작품으로 남아있다.

이중섭에 이어 찾아온 이가 장리석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제주를 왕복하면서 제주의 풍물을 화폭에 담았다. 제주인들의 삶의 건강함을 짙은 색채와 진득한 마티엘로 구현했다.

이왈종은 제주에 정착한지 오래됐다. 그 역시 제주만이 지니는 풍요로운 자연을 노래 부르고 있다. 상상과 현실이 어우러진 독특한 범신적 풍경은 이중섭의 '서귀포의 환상'을 잇고 있는 느낌이다. 제주로 몰려오는 젊은 예술가들이 이들의 예술정신을 이어 새로운 서귀포의 환상을 창조해준다면 그로 인해 독특한 문화가 자리 잡지 않을까 생각된다.  

제주는 육지와는 다른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다. 여기엔 육지에서 만나는 변화 많은 산천의 전개는 찾을 수 없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불쑥 솟아오른 기운과 그 언저리로 완만하게 펼쳐지는 들녘,   그리고 가끔 작은 봉우리를 만드는 오름으로 이어지는 풍경은 다른 지역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독특한 산천경개임이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제주의 풍경을 제대로 실사한 작품이 많지 않다. 육지의 풍경패턴에 익숙한 눈으로 이곳 풍경을 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선 제주출신 화가들의 풍경화가 제대로 경관을 파악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변시지  김택화  강요배의 작품들에선 제주만이 지니는 정서가 물씬 풍겨난다.

제주는 사방이 열려있고 개방적이면서 함부로 근접할 수 없는 요새이기도 하다. 한편으론 대단히 개방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대단히 배타적인 일면도 지니고 있는 제주 사람들의 성정도 이런 자연조건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제주를 찾는 사람들 가운데는 노후의 휴식을 위하고 찌든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상상을 꽃피우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제주는 예술가들의 꿈을 피울 수 있는 새로운 도래지로서 각광을 받기에 충분한 조건을 지닌 곳이라 할 만하다.

화가·사진작가·시인·소설가 등이 핍박하고 메마른 그들의 머리와 가슴을 씻어내고 새로운 창조의 샘물을 퍼 올린다면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예술의 지역  예술의 섬이 되지 않을까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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