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제주파(派)'] 25.화가 김품창·동화작가 장수명 부부

남원에 둥지 튼 지 13년 '어울림의 공간' 매력 꼽아
장르 넘나드는 작업…'외지인'의 경계 풀어야할 과제 
 
제주 섬이 내뿜는 기운은 영롱하다.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섬 중심에는 한라산이 우뚝 솟아있다는 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특별함이다. 마치 '판타지' 세계에 사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오늘도 마주한 건 한라산에서 미소를 머금고 서 있는 '설문대할망'이다. 서귀포시 남원읍에 둥지를 튼 지 13년째, 화가 김품창씨(48)와 동화작가 장수명씨(47) 부부는 힘들고 어려웠던 제주살이를 '설문대할망'이 지켜줬다고 믿고 있다. 제주 사람들보다도 오히려 더 제주 땅에 의지해 살아가는 이들 부부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어려움 뒤 찾아온 희망 
 
지난 2001년, 작업에 대한 딜레마에 빠져있었을 때 김 작가의 은사인 이왈종 화백은 제주행을 권유했다. 감성적으로 그림을 그리기에 제주가 안성맞춤이라는 이유에서다. 
 
잠시 당황했지만 부부는 '마흔 전에는 뭘 해도 괜찮지 않나'라는 믿음으로, 부모님에게는 거의 '통보'하듯 알리고 제주로 떠나왔다. 
 
처음 1년은 밥 먹고 그림만 그렸다. 제주가 주는 무한한 소재들을 혹시나 놓칠까 붓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경제적 어려움이 찾아왔고, 돈을 벌기 위해 그림책 삽화 그리기에도 나섰지만 좀처럼 상황은 나아지질 않았다. 결국 '다시 돌아가야 하나'라는 고민에 빠지게 됐다. 
 
그런 가운데 아내가 제주살이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글을 썼던 정 작가가 이주 온 이듬해 '동화작가'로 등단, 원고 청탁과 방과 후 학교 강사 등으로 활동하게 된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이 전화위복이 됐지만 그 때만 생각하면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진다. 
 
장 작가는 "정말 열악했었던 상황에 동화작가로 등단하고 또 이렇게 잘 정착해서 살 수 있었던 것은 제주 섬이 우리를 품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제주 땅은 특별한 것 같다"고 말했다.
 
부부는 제주에서만 20권의 그림책을 펴냈다. 모든 책은 제주 안의 소재들로 채워졌다. 그리고 '제주이야기' 시리즈로 지난해 똥돼지와 서귀포작가의 산책길을 다룬데 이어 오는 5월에는 제주 바다를 담은 이야기가 나온다. 
 
△누가 뭐래도 '제주인'
 
김 작가가 그 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꺼낸다. 
 
"제주 안에서는 자신을 '그림책 선생님'으로 아는 경우가 많은데 본업은 '회화 작가'"라며 "그림을 그리고 또 전시도 하지만 제주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어 아쉬움이 따를 뿐"이라고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제주 안에서 산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제주인'과 '외지인'이라는 불편한 경계가 이들 부부를 멈칫하게 한다. 지역 작가로 발이 묶일 까 경계에서 자유롭다고 말하면서도 지역에서 이들이 먼저 밀어내지는 않았는지 아쉬움이 든다.
 
김 작가는 "제주는 작업을 해나가는데 '판타지적' 영감을 불어넣어주고 있다"며 "누가 알아주길 바라진 않지만 제주 안에서의 요소들을 작업, '회화 작가'로 섬 안팎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인터뷰가 있던 날 아침 정 작가는 집에서 나오는 길에 한라산에 있는 '설문대할망'과 인사를 했단다. 
 
정 작가는 "설문대 할머니가 웃어주고 계시는 것 같아 기분이 다 좋다"며 "이제는 누가 뭐래도 제주인이 다 된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떤다. 고혜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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