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은 제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논설위원

   
 
     
 
표절(剽竊)의 영어 표현인 plagiarism의 어원은 라틴어의 납치자를 뜻하는 plagiarus, 또는 훔치다라는 의미의 plagiaire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다른 사람의 학설(ideas) 또는 논문·문학작품·사진 등의 저작물을 가져다가 자신의 것인 양 발표하는 행위'를 말한다.

표절자를 이르는 슬갑도적(膝甲盜賊)의 슬갑은 속곳이라는 뜻으로 광해군 때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芝峯類說)」의 권십육(卷十六) 어언부(語言部) 해학(諧謔)에 나오는데, 도둑이 훔친 속곳의 용도를 몰라 이마에 쓰고 다녔다는 데서 남의 글을 훔쳐다 잘못 쓰는 것을 가리키던 말에서 표절자인 문필도적(文筆盜賊)과 같은 뜻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하필 속곳이 등장하는 이유는, 매우 민망하고 남부끄러운 행위임을 뜻하는 것이리라.

신문지상의 문화예술면에서 자주 보았던 표절이라는 단어를 근자에 들어 사회면에서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모 장관이 표절 시비로 취임 며칠 만에 사퇴하기도 했고 교수나 연구원출신 고위공직후보자의 자질 검증에는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대학 내에서는 학생들의 리포트로부터 교수의 승진이나 업적평가에서도 문제로 제기되며 박사학위소지자가 늘어나면서부터는 직종을 가리지 않고 학위논문의 표절문제가 등장하고 있다.

남의 물건을 맘대로 가져가는 행위를 범죄행위로 보는 데 비해, 아이디어나 저작물은 보호받아야 될 누군가의 소유물이라는 것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데서 표절이 발생하기도 하고 성실하게 노력한 결과를 정당한 방법을 통해 얻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명예나 출세를 위해 쉽게 업적을 내려고 하는 잘못된 욕심의 결과로 발생하기도 한다.

여기서 표절시비와 관련된 사례를 한번 살펴보자.

△박사과정생 A는 박사논문을 작성하면서, 학회지에 발표된 다른 사람의 논문을 통째로 가져와 그대로 사용한 후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심사자가 이에 문제를 제기하자 자신이 논문작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며 고의성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연구자 B는 실증분석을 사용하는 연구를 시행하면서, 국내 학회지에 이미 게재된 다른 논문과 거의 동일한 제목, 분석틀, 변수와 지표를 사용했다. 심사자가 표절문제를 제기하자 외국문헌만 살피느라 이미 국내에서 동일 내용으로 연구가 된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연구원 C는 자유공모에 들어온 연구제안서의 아이디어에 심사결과를 통보하지 않고 동일주제로 발표논문을 구성해 세미나를 개최했다. 원래 아이디어를 냈던 제안자가 항의하자 그것은 제안서이지 논문이 아니었으므로 표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모두 실제로 필자가 겪은 일로, 연구윤리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판정을 받은 사례들이다. 독자들은 이 판정을 과연 수용할만하다고 생각하는가.

그간 우리 사회가 표절의 비윤리성에 대해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관대하거나 모호한 태도를 취해 왔으며, 명확한 기준을 정하거나 방지하려는 노력도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약했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일반인들이 전문 학술논문을 잘 읽지 않으며 이를 대상으로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낮다는 점과 분란을 일으키기 싫어 방관하거나 봐주기로 넘어가는 관행도 일반적 상식에 맞지 않는 판정의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엄연히 그것은 누군가가 배타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지적 재산임에 틀림없으며, 외국에서는 학위 취소는 물론, 대통령이나 장관이 사임할 만큼 심각한 문제이다. 지금이라도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표절에 관한 정의 및 판정기준과 프로세스를 정하고 연구윤리에 관한 교육을 필수적으로 실시하며, 검증시스템을 구축·보급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또한 표절이 발생했을 때 본인은 물론, 심사자나 학위수여를 한 대학, 소속기관에도 불이익을 줘야 한다. 과거의 인식부족과 무지로부터 발생한 일이라 어쩔 수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일정 기준을 마련해 엄정하게 적용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