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필 제주관광대 사회복지과 겸임교수·논설위원

   
 
     
 
복지확대는 지난해 총선과 대선을 거치며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국민 맞춤형 복지로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해 복지공약 이행의지를 분명히 했다.

새 정부의 복지정책 기조는 생애주기에 따른 맞춤형 서비스이다. 무상보육과 무상교육 확대, 국민행복연금 도입, 4대 중증질환 건강보험적용 등을 핵심과제로 추진한다. 이 과제가 순조롭게 이행된다면 복지국가는 말의 성찬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돈이다.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을 지급하겠다던 기초연금이 차등 지원으로 후퇴했고 4대 중증질환의 보장은 3대 비급여가 제외되면서 벌써 '빨간불'이 들어오고 있다.

복지공약 이행을 위해 정부가 추산한 추가비용은 135조원(연평균 27조원), 재원마련은 세출조정과 조세특혜 및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불요불급한 예산을 탈탈 털고, 세 감면을 쥐어짜고, 지하경제를 이 잡듯 뒤져도 한 해 10조원 미만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더구나 복지정책은 5년 임기, 현 정부의 단기정책으로 끝낼 수 있지 않다. 한번 준 복지를 다시 거둬들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4대강 사업처럼 대통령임기와 함께 접을 수 있는 정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인인구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우리사회의 경우 자연증가 비용도 엄청나다. 지속적 복지를 담보할 수 있는 재원확보가 관건이다.

묘책이 없다면 재원확보방안은 국채 발행 아니면 증세이다. 그러나 국채발행은 미래 세대의 부담이 된다. 게다가 재정건전성이 훼손돼 경제위기로까지 연결될 위험이 있다. 국채발행으로 복지를 실시해 온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의 경제위기가 그 방증이다.

결국 해법은 증세이다. 그러나 세금을 더 걷는 방안도 녹록치 않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복지의식의 이중성과 눔프현상' 보고서에 따르면, 64.4%가 무상복지에 찬성하는 반면 세금을 더 내겠다는 국민은 겨우 4.6%에 불과하다. 복지는 좋지만 내 주머니는 건드리지 말라는 눔프(Not Out Of My Pocket)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눔프는 지난 대선과 얽혀있다. 대선의 핵심 축은 복지, 여·야 구분 없이 선거 브레인들은 다수의 표를 표적으로 복지공약을 개발해 냈다. 복지공약은 현실진단과 해결 방안이 제시되면서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표심잡기에 급급, 무상복지를 경쟁적으로 쏟아 냈지만 증세는 불편한 진실이었고 국민은 그저 관중일 뿐이었다. 그 결과 복지는 공짜라는 오해와 착각을 심어 놓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공짜로 준다고 했으니 내 놓으라는 억하심정이다. 결자해지(結者解之)해야 한다.

"지도자가 대중의 뜻만 추종하면 그들과 함께 망하고, 대중의 뜻을 거스르면 그들의 손에 망한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플루타르크가 그리스·로마사에서 추출해낸 교훈이다. '복지는 좋은데 부담은 싫다'라는 대중의 뜻을 따르면 나라가 망할 수 있다. 지금이 첫 단추다. 이 나라의 모든 정당과 정치인은 자신이 무너질 각오로 복지는 공짜가 아님을 분명히 알리고 온 국민에게 증세를 설득해야 한다.

정치가 씨를 뿌리면 물을 주고 가꾸는 일은 국민의 몫이다. 우리나라의 담세율은 25%, 선진국의 37%보다 낮다. 복지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9%, 선진국의 28%에 비해 훨씬 낮다. 따라서 복지확대에 따른 증세 여지도 분명히 있다.

아래로부터 복지 운동과 증세 운동을 펼치는 것은 어떨까. 우리가 "세금과 사회보장 기여금을 더 내겠으니 복지도 확실하게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복지를 공동구매 한다고 생각하면 못할 바도 아니다.

복지는 공짜가 아니다. 시혜도 아니다.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인기영합에 몰두하는 정치인과 복지는 좋은데 부담은 싫다는 국민들로 넘치는 나라는 결국 나만 살겠다는 약육강식의 정글, 양극화와 민생 불안을 지금처럼 유지하고 사는 길밖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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