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포커스 / '멈춰선' 4·3유적지 복원·정비사업
빌레못굴·수악주둔소 등 안내판 없고 찾기 어려워
무관심에 방치·훼손…평화인권 교육장 활용 시급

한라산과 인접한 중산간 마을 어음리. 소위 '낮에는 토벌대 세상, 밤엔 무장대 세상'에서 시달려야 했던 마을 주민 29명은 소개령을 피해 빌레못굴로 숨어든다. 그러나 1949년 1월16일 굴이 발각됐고 숨어 있던 사람들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학살 당한다. 당시 빌레못굴에서의 학살은 바위에 머리를 메쳐 죽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그 잔인함 때문에 지금도 처절함의 상징으로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29일 찾은 빌레못굴에서 64년전 4·3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무성한 잡풀 사이로 보이는 동굴 입구는 굳게 닫힌 철문으로 막혀 있었다. '역사의 아픔'과 현재를 이어주는 통로를 막아선 철문에 채워진 자물쇠는 붉게 부식돼 스산함마저 느껴졌다.
 
4·3유적지임을 알리는 기본적인 안내표지판도 없는 탓에 굴 입구 동쪽 학살터는 그저 천연기념물인 용암동굴, 올레길의 일부 일뿐 4·3을 알리는 '역사의 현장'으로서는 잊혀져 가고 있다. 
 
1949년부터 토벌대가 머물렀던 수악주둔소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곳은 경찰주둔소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남아 있어 지난 2005년 복원 계획이 수립됐지만 아직까지 진입로조차 정비되지 않아 사람의 발길이 끊긴 상태다. 
 
30일 남원읍 신례리 마을공동목장 축사에서 북서쪽으로 1㎞ 가량(수악 동남쪽 신례천과 하례천 계곡 사이 동산) 잡목 숲을 헤치고 나서야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렵게 찾은 수악주둔소는 유적지라 부를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성벽을 이뤘던 돌들은 어지럽게 널려 있고 각종 나무와 잡초들이 우거진 채 방치되고 있었다.
 
이처럼 정부의 무관심 등으로 인해 4·3유적지에 대한 복원·정비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4·3역사를 간직한 유적지가 방치되는 것은 물론 훼손마저 가속화되고 있다. 
 
이에 대해 4·3관련 단체 및 도민사회는 2010년 이후 중단된 4·3유적지 정비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며 평화·인권의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한 4·3유적지 정비 사업을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는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강권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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