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포커스 / '멈춰선' 4·3유적지 복원·정비사업
중요유적 19곳 대부분 방치…북촌 등 3곳만 완료
2010년 이후 국비지원 중단…새 정부 지원 절실

▲ 무관심 속에 방치돼 훼손되고 있는 4·3유적지들. 사진 왼쪽부터 빌레못굴, 수악주둔소 성벽,영남동 잃어버린 마을. 강권종 기자
△ 유적지 복원 사업 물꼬 
 
제주4·3유적지 복원·정비 사업이 본격화된 것은 2003년이다. 4·3주요 유적지를 복원, 정비함으로써 후세들의 역사 및 인권교육장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유족과 관련단체, 도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제주도는 제주4·3평화공원 조성과 더불어 유적지 복원사업의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2003년 10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공권력 행사에 대해 사과를 표명하면서 제주4·3관련 사업 지원을 약속했으며 유적지 복원·정비 사업도 물꼬를 트게 됐다. 
 
이에 2003~2004년 4·3유족지 597곳에 대한 전수조사가 실시됐으며 2005년 11월 제주4·3유적 종합정비 기본계획이 수립됐다. 이어 2006년 4~12월 제주4·3유족 종합정비 실시설계 용역이 실시되는 등 4·3유적지 복원·정비 사업은 급물살을 탔다. 
 
특히 2006년 4월3일 노무현 대통령이 제58주년 제주4·3사건희생자 위령제에 참석, 4·3사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재차 확인한데다 2007년 10월8일 4·3중앙위원회에서 제14차 전체회의를 통해 유적지 정비 및 유해발굴사업을 심의·의결함으로써 안정적인 사업 추진의 기반을 마련했다. 
 
△ 19곳 유적지 정비 계획 수립
 
2005년 수립된 제주4·3유적종합정비 및 유해발굴기본계획은 도내에 산재한 수많은 유적 가운데 역사적으로 상징성이 있고 가장 중요한 유적 19곳을 선정했다. 구체적으로 역사성과 보존성, 유형별 대표성, 지역적 대표성, 대중성, 접근성, 부지매입 용이성 등 7가지 평가 항목을 기준으로 선정했으며, 이런 중요성을 감안해 더 이상 훼손해서는 안 되는 만큼 시급히 보존·복원계획이 실행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선정된 19곳은 △잃어버린 마을(2곳) 곤을동(제주시 화북동), 영남동(서귀포시 대천동) △성터(2곳) 낙성동 4·3성(조천읍 선흘리), 진동산 뒷골장성(한림읍 상대리) △학살터(6곳) 섯알오름(대정읍 상모리), 다랑쉬굴(구좌읍 세화리), 목시물굴(조천읍 선흘리), 북촌 너븐숭이(조천읍 북촌리), 표선 한모살(표선면 표선리), 터진목(성산읍 고성리) △민간인 수용소(1곳) 주정공장터(제주시 건입동) △역사현장(2곳) 관덕정 앞 광장(제주시 삼도2동), 오라리 방화사건 현장(제주시 오라동) △주둔소(2곳) 관음사 주둔소(제주시 아라동), 수악 주둔소(남원읍 신례리) △은신처(4곳) 큰넓궤(안덕면 동광리), 빌레못굴(애월음 어음리), 한수기곶(한경면 산양리), 북받친밭(조천읍 교래리)등이다.
 
이에 따라 제주도는 2005~2009년 중요유적 19곳에 사업비 146억원을 투입, 복원 정비에 나선다는 계획이었으나 현재까지 정비가 북촌 너븐숭이, 섯알오름 학살터, 낙성동4·3성 등 3곳에 불과하다. 
 
△ 중단된 사업, 재추진 필요
 
2006년 북촌 너븐숭이 학살터의 복원 정비를 시작으로 속도를 낼 듯 했던 4·3유적지 정비사업은 2010년 사실상 중단되다시피했다. 
 
2012년 예산만 하더라도 정부안에 편성되지 못하면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제주4·3유적지 정비사업 예산 15억원을 별도 편성했으나 당시 여당의 날치기 처리 과정에서 반영되지 못했다. 
 
이처럼 4·3유적지 사업은 2010년 이후 정부의 예산 지원이 중단되면서 지방비로 성산터진목의 위령비, 안내간판 정비, 옛 주정공장터 토지매입 등 일부 유적지에 대한 주변정비와 안내표지판 설치 등을 실시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렇다보니 4·3역사 현장으로서 복원, 활용돼야 할 4·3유적지가 아예 찾기조차 어렵거나 훼손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화북 해안가에 위치한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은 올레코스 일부로 자리 잡고 있지만 안내표지판만 있을 뿐 복원계획이 시행되지 않으면서 4·3유적지임을 알리는 데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더욱이 바닷가 석축이 무너지는 등 점점 원형이 훼손되고 있어 복원 정비 사업이 시급한 실정이다. 
 
다랑쉬굴에 숨어들어 피난생활을 하다 몰살당한 유골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4·3의 비극을 고스란히 보여준 다랑쉬굴 역시 여전히 낡은 안내표지판만 덩그러니 있을 뿐 역사 현장으로서 보존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처럼 4·3유적지가 방치되고 훼손이 가속화되면서 4·3유적지 정비사업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다. 특히 현재 중요유적 19곳은 4·3유적지의 일부분에 불과하며, 나머지 정비계획이 수립되지 않은 4·3유적지에 대한 합리적인 관리 방안 등 앞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는 산적하다. 
 
이에 지난 대선 과정에서 4·3국가추념일 지정을 비롯해 4·3으로 인한 도민아픔 해소에 노력하겠다던 새 정부에 대해 거는 기대도 크다. 또 예산 확보를 통한 복원·보존은 물론 관련 조례를 제정해 체계적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제주도는 "현재 시급히 복원 정비가 이뤄져야 할 유적지는 12곳으로, 제주도는 57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며 "정부가 바뀐 만큼 분위기도 달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내년 예산에 20억원을 요청, 3년에 걸쳐 나머지 유적지에 대한 복원 정비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박미라 기자
김창후 제주4·3연구소장은 "4·3유적지에 대한 훼손이 이어지고 있다"며 "더 이상 4·3유적지 복원정비 사업을 늦춰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김 소장은 특히 화북동 해안가에 위치한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을 대표적으로 언급하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곤을동은 4·3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터임에도 방치되면서 바닷쪽 석축이 무너지는 등 원형이 훼손되고 있다"며 "곤을동은 정비 규모가 크지도 않아서 당장이라도 안곤을을 매입하고 정비를 실시, 4·3을 알리는 역사와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랑쉬굴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김 소장은 "다랑쉬굴 역시 팻말만 세워놓고 입구만 막은 채 방치되고 있다"며 "다랑쉬굴 유물처리도 해야 되는데 정말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김 소장은 "4·3유적지 정비 사업이 중단된 데는 정부의 지원이 끊긴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며 "국가가 행한 공권력에 의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국비가 당연히 이뤄져야 하지만 최근에는 시급히 정비가 요구되는 부분은 제주도도 어떻게든 방안을 마련해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김 소장은 "올해 1, 2차 조사에서 제외됐던 미조사 마을 40여곳을 대상으로 4·3유적지에 대한 3차 조사가 실시된다"며 "우선 급한대로 4·3유적지 조사만 이뤄지고 있으나 중요유적에 대한 정비가 시급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박미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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