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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담론]4·3 증언, 그늘속의 여성들, 약속허영선 시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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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04-02 (화) 20:17:11 | 승인 2013-04-02 (화) 20:17:11 | 최종수정 2013-04-02 (화) 20:17:51

   
 
     
 
자욱한 적막의 끝에 꽃은 피었다. 무자년 그해 겨울, 위험한 시절을 눈치 챈 꽃들도 눈을 뜨다 숨 죽였으리. 해서, 제주의 사월은 찬란하나 무참하다. 그 시절,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다.

"나보고 쉐(소)닮은 년이렌 해. 회의에 참석헌 사람 이름 불라고. 죽어도 나 혼자 죽는다고 마음먹고 일절 말을 안 했지.……여기! 이 왼손 팔목에 영 튀어나온 거, 손가락 꺾어진 거. 이 어깨가 바람만 불젠허민 소식을 알려와. 몸살로 그냥 쓰러지는 거라. 내가 노인당에 강 남의(남의)말 들으멍 같이 놀긴 허주만 다른 할망덜은 내가 얼매나 아픈지 몰라. 스물다섯에 이추룩 된 게 여든 넘엉 내가 살암시난 첨 독헌 거라. 독해" 고문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애월읍 수산리 양경숙 할머니.

먹을 풀도 없던 시절, 만삭의 여인은 이미 불에 타버린 시댁에 들어갔다가 마당에 삐죽삐죽 막 돋아난 풀을 뜯었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먹다가 배가 아파 대굴대굴 굴렀다했다. 광령리 이만수 할머니. 그녀가 그런다. "검질매는 사름한티도 총 잇어"

애월읍 상가리. 현신생 할머니. 열여섯에 결혼, 4·3의 와중에 병든 시아버지가 공권력에 의해 희생됐다. 얼마 없어 시어머니가 화병으로 세상 떴다. 시부모 삼년상 홀로 치렀다. 남편과 시동생이 부재중일 때 홀로 보초도 섰다. 열 번도 넘는 제사, 스물한 살 가장이 된 며느리의 길은 서럽고 혹독했다. 그해 겨울, 퍼들퍼들 눈 내리는 날. 세 살 아긴 제대로 돌보지 못해 숨을 거뒀다. 4·3 광풍을 견디며 살아내야 했던 이는 딸 같은 며느리다. 그런 그녀가 항변한다. "왜 나는 유족도 안 되는 거냐"고.

대부분 스물도 안 된 나이에 결혼한 제주의 며느리들에게 4·3은 온갖 고통을 몸과 가슴에 조각조각 새기게 했다. 허나 정작 이러한 며느리들 중엔 4·3유족들에게 지원해주는 30%의 병원진료비, 80세 이상의 유족 지원금 월 3만원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왜냐. 현행 특별법의 유족 범주에서 직계가 아닌 며느리는 빠진다. 현실의 법이다. 물론 남편은 유족이다. 그렇게 참혹한 슬픔의 소용돌이를 건너 황혼 자락에 선 이들이다.

'죄 없는 게 죄였던 시절'. 4·3을 겪은 이들은 참으로 온전하게 말을 쏟아내지 못하며, 온전하게 받아 적지 못한다. 구술로 드러나지 않은 역사를 잇고 있는 제주4·3연구소가 이번 대중서로 펴낸 4·3구술집 5, 6권
「다시 하귀중학원을 기억하며」와 「빌레못굴, 그 캄캄한 어둠속에서」는 남녀 증언자들 31인의 기억과 경험이다. 살아있는 4·3제주민중사다.  

물론 이것은 대강의 사례들일 뿐. 우리 주변에 시부모를 모시고, 남편 없다는 이유로 모진 고문을 당하고도 직계 가족의 희생이 아니면 유족이 안 되는 여인들에 눈길이 간다.

4·3 진실규명이 여기까지 올 때까지 그들은 숨죽여 있었다. 공권력에 의한 희생을 딛고, 그 시국에서 들풀처럼 살아남은 사람들, 4·3특별법의 사각 지대에서, 홀로 남아 생을 보내고 있는 4·3의 1세대다. 지금 움직일 힘마저 희미한 그들에게 과연 4·3은 무엇인가. 4·3그늘에 선 여인들을 유족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일은 불가능한 일인가. 조례를 만들고 4·3특별법을 개정할 때 포함시키면 가능한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하여, 첫 여성 대통령으로서 이러한 여성들의 고통을 더 공유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그건 대국민과의 약속이었다. 약속은 의지다. 박근혜 대통령은 공약으로 4·3의 '완전 해결'을 약속했다. 오늘 65주년 4.3의 이 아침. 유족들이 그렇게 기다리던 4.3위령제에 대통령은 오지 않았다. 청와대 안에서 4·3에 대해 논의되거나 이야기되는 걸 들어본 적도 없었다니. 4·3영령들도 아마 실망이 컸으리. 4·3완전해결의 첫 단추가 위령제 참석 아니던가. 약속대로라면 이제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들이 기다린다. 4·3추모 기념일 제정, 제주4·3평화재단 국고지원 확대, 유가족의료복지 확대 등도 그렇다. 또한 4·3트라우마센터 건립, 유족의 상시 신고 제도, 호적정정의 문제 등 4·3특별법의 보완도 가야할 길이다.

저리 화르륵 지는 꽃들도 절규하는 이 비애의 4월. 그러니, 희망한다. 제주의 봄날을 정녕 찬란한 봄날로 맞이할 수 있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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