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포커스 / 4·3, 문화예술로 알리자
군부독재시절 문학작품 4·3운동 기폭제 역할
'레드헌터' 등 영상화 본격화…전국화에 기여
'지슬'의 근원, 고 김경률 감독 '끝나지 않은…'

▲ 이데올로기와 힘의 논리에 사로잡힌 4명의 주인공을 통해 4·3을 은유적으로 풀어낸 정종훈 감독의 2010년작 영화 '꽃비'
△ 금기 벽 허문 4·3소설
 
금기어였던 4·3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4·3진상규명 운동에 불을 댕기는데 문화예술계의 역할을 지대했다.  
 
1978년 서슬퍼런 유신 시절 제주도민의 한 맺힌 4·3이 30년만에 세상에 알려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생긴다. 누구도 입 담지 못한 4·3을 소설가 현기영씨가 소설 '순이삼촌'을 통해 풀어낸 것이다. 
 
'창작과 비평'을 통해 금기의 벽을 허문 현기영씨는 당시 소설 '순이삼촌'으로 수만명의 인명살상을 고발, 4·3 진상규명 운동을 촉발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당시 현기영씨는 이로 인해 수사시관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하기도 했으나 이후에도 꾸준히 4·3을 소재로 한 소설을 발간해왔다. 이에 앞서 김석범씨의 장편소설 '화산도' 역시 4·3의 배경과 과정, 제주의 풍토, 민요, 신앙, 신화까지 담아낸 역작으로 1984년 아사히신문의 오사라기지로상, 1998년 일본 마이니치 신문사의 제39회 마이니치 예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4·3영상화 본격화
 
▲ 임흥순 감독의 영화 '비념' 포스터.
4·3 문화예술작품은 초창기 소설과 희극, 시 마당극, 그림 등이 주를 이뤘다면 1990년대 들어서는 영상을 통한 4·3 담아내기가 본격화된다. 
 
김동만 감독은 1992년 다랑쉬굴의 시신발굴과 유해처리까지 과정을 담은 '다랑쉬굴의 슬픈 노래'에 이어 1995년 독립다큐멘터리 '잠들 수 없는 함성'을 통해 화제를 모았다. 1997년에는 부산출신의 조성봉 감독이 체험자의 인터뷰를 통해 대량학살의 문제를 본격 조명한 '레드헌트'(Red-Hunt)를 제작했다. 
 
하지만 '잠들 수 없는 함성'으로 인해 김동만 감독과 영화 '레드헌트'를 상영한 인권운동사랑방 서준식 대표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다. 
1997년 4·3을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거나 상영했다는 이유로 감독 등이 구속되면서 시민사회가 강하게 반발, 오히려 탄압받은 두 작품은 전국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며 이는 역설적으로 4·3을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특히 '잠들 수 없는 함성'은 일본어, 중국어 자막이 들어간 비디오로 출시되어 일본과 대만 등지에서 상영됐다. 
'레드헌트'는 베를린 영화제, 암스테르담 영화제 등에 초청됐고, 영어로 번역돼 독일뿐만 아니라 미국, 스위스 등지에서 상영됐다. 
 
이외에도 김동만 감독이 소속된 4·3다큐멘터리제작단은 '제주도 메이데이의 실체'(1998년), '무명천 할머니'(1999년), '유언'(1999년), '일본으로 간 4·3위령제'(2001년) 등의 4·3다큐를 활발히 출시했으며 조성봉 감독의 '하늬영상'은 '레드헌트 2'를 만들어 영상을 통한 4·3 진실찾기에 한몫했다.
 
2005년 김경률 감독(1965∼2005)의 '끝나지 않은 세월'은 4·3을 소재로 한 최초의 극영화라는 점에서 제주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현재 흥행열풍을 이어가고 있는 오멸 감독의 '지슬'이 있게 된 배경이며 4·3극영화의 물꼬를 튼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오멸 감독은 각종 인터뷰를 통해 4·3사건을 담은 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을 찍다가 뇌출혈로 사망한 김경률 감독의 뜻을 기리기 위해 영화를 제작했다고 누누히 밝혀왔다. 영화 '지슬'에 '끝나지 않은 세월 2'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유다. 
 
'끝나지 않은 세월'로 시작된 4·3영화는 2010년 4·3을 은유적으로 그려낸 '꽃비'(감독 정종훈), 오멸 감독의 '지슬', 임흥순 감독의 '비념'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외에도 박재동 감독이 애니메이션 오돌또기, 임원식 영상위원회 부위원장의 순이삼촌 등이 추진됐으나 제작비 등의 문제로 중단된 상태다. 
 
△ 4·3콘텐츠 고민 필요
 
영화 지슬은 독립영화이자 4·3을 다룬 영화로서 경이로운 기록을 이어나가고 있다. 4·3 당일인 3일 누적관람객 7만명을 돌파한데 이어 다시 사흘만인 6일 8만명을 돌파했기 때문이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흥행 속도가 시간이 갈수록 빨라지면서 이러한 추세라면 10만명도 달성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4·3관람객이 늘어나는 것은 그만큼 4·3을 알게되는 이들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부에서는 그간 지지부진했던 4·3의 전국화와 세계화의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로도 해석하고 있다. 
 
실제 네티즌들은 관람후기를 통해 "불편하고 아프지만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 낸 수작. 끝나지 않은 역사라서 더 아프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그레딧이 올라간 후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너무 아프고, 무겁고, 슬픈 수작", "아직까지도 풀지 못한 우리의 역사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꼭 봐야할 우리 역사..되풀이 하지 말아야 할 역사이야기" 라는 평들이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세계최고 권위의 독립영화축제인 29회 선댄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부산국제영화제 4관왕, 브졸국제아시아영화제 황금수레바퀴상 등 영화 '지슬'이 이뤄낸 놀라운 성과는 4·3의 세계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지난 2008년 4·3 60주년을 앞두고 제주지역 사회에서는 4·3의 전국화·세계화가 화두로 떠올르면서 대대적인 행사를 치러낸 경험이 있다. 
 
하지만 영화 '지슬'과 같은 작품이 꼬리에 꼬리를 물도록 문화콘텐츠 개발과 지원 시스템을 보다 고민했었다면 4·3의 전국화 세계화는 더욱 당겨졌을 것이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금에 이르러 찬사를 쏟아붓고 있으나 실제 영화 '지슬'에 제주도가 지원한 것은 영상위원회 2500만원, 4·3평화재단 1000만원 수준이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놓기가 아닌 제2의 지슬을 위한 시스템 구축에 나서야 할때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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