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수 이중섭미술관 명예관장·논설위원

   
 
     
 
성게 미역국은 향토음식이고 도다리 쑥국은 시절음식이다. 성게 미역국은 제주에 가야 제대로 먹을 수 있고, 도다리 쑥국은 4월 경남 통영에 가야 맛볼 수 있다. 향토음식은 어느 지역의 특징적인 음식을 가리키는 것이고, 시절음식이란 어느 한 철에만 먹는 음식을 이름이다.

필자는 제주에 올 때마다 성게 미역국을 찾는다. 여러 식당의 성게 미역국을 시식해보았지만 서귀포 이중섭미술관 근처에 있는 S식당의 것이 필자의 입엔 가장 맛있다. 그러니까 음식은 비교가 된다. 같은 향토음식이라도 식당에 따라 격차가 생기기 마련이다. 제주의 향토음식 가운데는 조개류나 새우 등 해물을 된장에 풀어 끓인 뚝배기가 꼽힌다. 제주는 향토음식이 제대로 그 맛을 유지하고 있다고 본다.

토산물이란 그 지역의 독특한 향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지역을 벗어나면 그 향미가 반감되는 것은 물론이다. 예컨대 전주 콩나물 해장국은 가끔 서울에서도 눈에 띄지만 전주에서 먹던 그 맛은 아니다. 어떤 이는 콩나물을 길러낸 물에 맛을 결정지우는 원인이 있다고 하지만, 단순히 물 뿐만 아니라 공기와 햇빛 등 자연적인 요인이 함축되고서야 나오는 것일 것이다.

전주는 콩나물 해장국에 못지않게 비빔밥으로도 유명하다. 이제는 전주가 아니어도 전주비빔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보편화된 지 오래다. 그런데도 다른 지역에서 먹는 비빔밥은 전주에서 먹는 비빔밥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단순히 전주식일 뿐이지 전주비빔밥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처럼 향토음식이 보편화되는 경우를 가끔 보게 된다. 아귀찜은 마산에서만 맛볼 수 있었던 향토음식이지만 지금은 어디를 가나 마산 아귀찜을 볼 수 있다.

아귀찜을 좋아하는 식도락가들에겐 다행한 일인지 모르나 마산 아닌 다른 지역에서 맛보는 아귀찜은 본고장인 마산만은 못하다는 느낌인데 역시 향토음식은 본고장에 가서야 제대로 그 맛을 음미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향토음식은 역시 본고장에서 먹어야 제 맛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제삿밥은 제사 때마다 먹는 음식이지만 제사 때가 아니어도 먹을 수 있는 것에 독특한 향취가 있다. 안동 제삿밥이 유명하게 된 것도 그 지역이 갖는 역사적 배경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시절음식으로 단연 첫 손에 꼽을 수 있는 것으로 도다리 쑥국을 들고 싶다. 몇 해 전 통영에 갔다가 처음 시식한 것인데 4월에만 나는 음식이다. 도다리가 가장 살이 오를 무렵 들녘의 양지엔 쑥이 올라온다. 어느 정도 도다리를 끓인 후 쑥을 넣는데, 살이 오른 도다리의 담백한 어육과 봄 들녘에 갓 올라온 향긋한 쑥이 어우러져 내는 향취는 잊을 수 없다. 서울에 도다리 쑥국을 한다는 깃발을 보고 들어갔다가 실망을 하고는 역시 향토음식, 시절음식은 장소와 때가 중요함을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향토음식을 전국화 한다는 것은 지역적 특성을 무화시키는 것이다. 어디를 가나 있게 되면 이미 지역적 특성은 없어지게 된다. 어느 관광지를 가나 한결같이 똑같은 관광 상품이 널려있는 것을 보면서 관광정책의 맹점을 통탄하게 되는데 음식까지 가는 데마다 똑같다면 여행의 재미는 어디서 찾을 것인가. 음식은 만드는 요리사의 손에 달려있지만 향토음식은 그 지역이 지닌 역사와 풍토, 그 곳 사람들의 정서가 배어 있어야 참다운 향토음식이라 할 수 있다.

예술도 이와 같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한국의 역사와 풍토와 한국인의 정서가 어우러진 것이야말로 한국적인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의 보편화도 좋지만 특수화도 장려돼야 한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예술로 인해 한국을 찾아오는 외국인들이 많다는 사실도 이제는 자각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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