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8년 초여름 창작과 비평에 작가 현기영의 소설‘순이삼촌’이 발표됐다. ‘순이삼촌’으로 작가 현기영은 수차례 당국에 끌려가는 고초를 당했다. 당시로서는 금기였던 4·3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작가 스스로 금기가 돼버린 것이다.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지금 4·3을 소재로 한 소설이 다시금 우리 곁에 다가왔다.

 1945년생, 1974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타인의 목소리'가 당선되면서 등단한, 이제는 문단의 중견이 된 작가 노순자의 「백록담 연가」 「백록담 연가」는 미군정에 의한 정치적 희생이라는 시각으로 4·3을 바라보고 있다.

 소설은 4·3 50주년을 맞아 한 월간지로부터 특별 연재를 부탁받은 작중 화자인 ‘나’의 제주 취재기와 47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했다 체포당하고 경찰인지 서청인지도 모를 사람의 아이를 잉태한 ‘금생’의 삶이 날줄과 씨줄로 얽히면서 전개된다.

 지리멸렬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아내와 별거중인 작중 화자 ‘나’의 제주취재기가 날줄이라면 경찰과 서청에 의한 양민학살을 경험하고 가해자의 폭행으로 아이를 잉태한 ‘금생’이라는 인물의 개인사는 씨줄이다.

 4·3의 자료들을 뒤적이면서 민족사의 비극에 눈뜬 나는 결국 4·3을 체험한 사람을 찾아 나선다.

 ‘나’가 만난 인물은 ‘몹쓸 일’을 겪고 난후 제주를 떠나 서울의 한 위성도시에 정착해 살고 있는 노인 금생. 눈에 바다를 담고 있는 노인을 만나 ‘나’는 그녀의 개인사를 좇는다.

 4·3의 발발의 계기가 됐던 3·1절 기념식, 투옥, 그리고 고문중에 일어난 원치않는 임신, 죄인의 아이를 임신한 죄책감에 아이와 함께 죽을 결심을 하지만 아이에게는 죄가 없다는 산사람 윤보의 말에 단념하고 마는, 그녀의 기구한 삶을 통해 작가는 민족의 정체성과 개인의 정체성이 무관하지 않을 깨닫게 된다.

 한편 작가 노씨는 “이번 소설 집필에 제민일보 4·3 취재반의 「4·3은 말한다」가 많은 참고가 됐다”며 “취재 여행차 제주를 찾았을 때 문창우 신부의 적극적인 권유가 집필에 용기를 줬다”고 밝혔다. 노씨는 90년 한국소설문학상, 98년 펜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대표작으로 ‘몽유병동’ ‘타인의 목소리’ ‘사춘기’ 등이 있다. 도서출판 열린. 7500원.<김동현 기자>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