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순환 드라마 제작사 ㈜러브레터 대표이사·논설위원

   
 
     
 
10년도 훨씬 전에 읽었던 책이 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세계적인 다국적 컨설팅 회사의 한국 지사장으로 있던 사람이 쓴 책이었다. 책 제목은 지금 희미하지만, 그 책의 한 장(Chapter) 제목은 지금도 선명하다. '갑'이 지배하는 나라, 대한민국. 한국계이면서 미국에서 성장한 뒤,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던 한 경계인의 눈에 비친 우리나라는 창피하게도 '갑'이 지배하는 나라였다.

지금도, 대한민국은 '갑'이 지배하는 나라다. '갑'이란 계약이나 사업상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나 기업, 기관 등을 의미한다. '갑'의 지배란 정부와 민간기업, 대기업과 하청기업, 권력이 있는 자와 권력이 없는 자 중에서 전자가 후자('을')에 대해 자기 맘대로 하는 것이다. 생사여탈권을 쥐고, 또는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지위를 이용해 '독재'를 하는 것이고, '수탈'을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불행 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벤처의 꿈을 안고 사업을 벌였던 유능한 엔지니어들(이공계 출신들)이 이 나라에 절망하고 있는 것도 몹쓸 '갑을' 구조에서 기인하는 바 크다.

정치권력이든, 경제 권력이든, 성적 권력이든 그 권력('갑')이 통제를 받는 것은 가능할까? '갑'의 전횡은 바로잡힐 수 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두 가지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첫째, 해당 상황에서 직접적으로 '갑'도, '을'도 아닌 제3자로서의 시민 또는 시민사회가 '갑질'을 '응징'하는 것이다. 대리 점주에 대한 인격모독과 밀어내기 영업으로 지탄을 받은 남양유업의 매출이 시민들의 불매운동으로 30% 이상 감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시장(market)에서 왕인 '갑'을, 시민(citizen)들이 손보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SNS의 발달은 이 같은 시민들의 단결과 응징에 날개를 달아줬다. 정보 민주화의 시대는 둘 만이 있는 공간에서 '을'을 괴롭히던 '갑'을 시민들의 광장으로 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침묵하는 다수가 아니라, 발언하는 시민들이 '갑'을 견제할 수 있다. 

둘째, '을'의 저항이다. 드라마 제작사를 운영하고 있는 필자도 사업적으로 '을'의 위치를 갖고 있다. '을'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 손해를 감수해야만 하는 일을 겪는다. 그렇다고 언제나 고개를 숙이고, 시키는 대로 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행복하지도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생존에 유리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종종 '갑'에게 꼴통 '을'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필자 자랑이 아니다. 적어도, '갑'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고래로 권력을 가진 자가 스스로 자신의 특권이나 이익을 버린 경우는 없다. '갑'도 그렇다. '을'이 버티고, 저항하고,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해야 하고, 그래야만 '갑'도 마음대로 '갑질'을 못하게 될 것이다. 이 얘기가 한가하게 들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정말로 황당무계한 '갑'들이 많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보자. 지레 겁을 먹고, 슬기를 총동원해 방법을 강구하지 않고, 정말로 간절히 상황을 바꾸려고 애쓰지 않은 채, 스스로 이 나쁜 시스템에 몸을 맡겨 버리는 것은 아닌지. 눈물이 앞을 가리는 상황에서도, 그 눈물을 말려버리겠다는 굳은 의지로 당당하게 주장하고, 권리를 관철하려고 하는 것은 적어도 '을'이라는 불행 속에서 그나마 행복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는 길이지 않을까. 덜 억울해질 수도 있고, 자신의 권리를 좀 더 확보할 수도 있고, 최소한 비굴하게 살고 있지는 않다는 '자존감'을 얻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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