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역사를 뒤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그럼에도 역사에 대한 가정법은 후세에 와서 심심치 않게 거론된다.이를테면 클레오 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어도 세계의 역사는 바뀌어 있을 것이며,세르비아 청년에 의한 일발의 총성이 불발이었던들 비극적인 세계대전이 발발하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따위의 가정이 그것이다.이같은 가정법은 비극적인 역사일수록 종종 동원된다.아쉬움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비극적인 역사가 되풀이 돼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전제되고 있다.현대사 최대의 비극이라는 제주의 4.3 또한 예외일 수는 없다.

 현대사가와 4.3연구가들은 4.3의 도화선이 3.1발포사건이란데 크게 이론이 없다.47년 3.1절 기념식 날 관덕정 광장에서의 경찰 발포로 무고한 주민들의 희생된 사건이 그것이다.발단은 기마경관의 말발굽에 어린이가 채이면서다.군중들이 동요했고, 미군정 경찰이 엉겁결에 발포했다.경찰의 발포로 어린 초등학교 학생에서 간난애를 안고 있던 아낙네등 여섯명의 무고한 주민들이 숨졌다.예기치 않은 돌발사태였다.문제는 미군정과 경찰의 사후대처였다.

 순리대로라면 당국은 당연히 발포자에 대한 처벌과 경찰수뇌부에 대한 인책등 사태무마에 나섰어야 했다.그러나 그렇지 못했다.경찰발포를 정당방위에 입각한 당연한 조처라고 했다.

 한술 더 떠 사태를 좌익세력의 준동으로 호도,도민들을 자극시켰다.미증유의 비극은 여기서부터 비롯됐다.

 역사의 가정법은 4.3의 시발이 된 당국의 부적절한 대응으로 거슬러 간다.경찰과 미군정 당국이 당시의 돌발사태에 현명하게 대처했더라면 4.3이라는 비극적인 역사는 없었을 것이라는...물론 오늘에 와서 4.3의 역사적 책임을 경찰에만 떠넘길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총체적으로는 미국의 세계전략과 무관하지 않으며,한반도의 시대적 상황이 애시당초 비극을 잉태하고 있었다.같은 맥락에서 경찰 또한 시대의 속죄양일 수는 있다.하지만 비극적인 역사에 상당한 원인행위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책임으로부터 경찰이 자유로울 수는 없다.

 최근 4.3을 좌익폭동으로 규정한 제주지방경찰청의 '제주경찰사' 발간이 일파만파를 부르고 있다.사회적 파장에 경찰당국도 꽤나 곤혹스러운 모양이다.4.3역사 쓰기에 앞서 준열한 자기 반성이 있어야할 경찰로서는 당연한 업보다.반세기전 부적절한 대응이 엄청난 비극을 초래 했음을 상기,현명한 사후조처가 있어야 할 것이다.<고홍철·논설위원 겸 코리아뉴스국장>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