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KBS 1라디오 진행자·논설위원

   
 
     
 
정당은 가능한 많은 표를 획득해 집권하려는 정치 세력이다. 상품을 많이 팔려는 기업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가능한 많은 소비자를 얻기 위한 기업 전략은 정당 정치에도 유효하다. 이에 따르면 정당 역시 가능한 많은 유권자를 겨냥하게 마련이다. 좌우 스펙트럼의 정당 역시 목표 고객은 다수의 중도 성향 유권자들이다. 집권을 노리는 대중 정당이라면, 틈새시장에 불과한 소수의 양극단 유권자는 포기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좌우 정당 모두 이름이 무색해질 정도로 색깔이 비슷해진다. 양대 정당 간에는 그야말로 미세한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경제학의 한 분파인 공공선택(public choice) 이론은 정당정치의 미래를 이렇게 전망한다.

오늘날 미국에서 보는 정당정치는 이런 전망과는 정반대다. 오랫동안 양대 정당이 번갈아 집권해온 이 나라에서조차, 최근에는 정치 양극화(political polarization)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최고조에 달했다. 이는 경제 요인에 기인한 경제·사회 양극화만큼이나 사회 불안을 조성하는 변수다. 사회 현안에 대한 대응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정책 불임 현상을 낳고 있어서다. 민주당이 집권하면 공화당의 반대로 어떤 정책도 실행할 수 없다.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대통령과 의회 간 견제와 균형의 미덕은 갈등과 대결의 악순환으로 변질돼버렸다. 타협과 절충의 의회 정치 전통마저 사라지고 있다. 그 결과 초당주의적 접근법을 취해온 오바마 행정부는 온갖 악재에 손 한 번 제대로 못 써 보고 우유부단하고 무능한 정부로 전락하고 있다.

미국에서 민주·공화 양당의 접근법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연원을 따지자면, 시장의 기능과 정부의 역할에 대한 시각차다. 시장에 맡겨두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시각과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시각 사이의 차이다. 이에 따라 총기 규제와 사회보험, 그리고 재정 건전성 문제 등 대부분 현안에 대해 입장이 엇갈린다.

우리의 경우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미국식 정치 양극화보다 더 어려운 이념 양극화 양상을 띠고 있어서다. 미국식의 정치 양극화에 더욱 복잡한 이슈도 결부돼 있다. 예를 들면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국가와 민족 가운데 무엇을 더욱 중시할 것인가와 같은 문제들이다. 이에 따라 보수 진영은 상대방에 종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진보 진영은 상대에 친일이라는 낙인을 찍으려 한다. 자신들의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면 현대사마저 왜곡하려 들 정도다.

게다가 우리는 의회 정치가 가진 견제와 균형의 원리나 타협과 절충의 전통에도 익숙지 않다. 이로 인해 우리에게는 정책 불임뿐만 아니라 사회적 분단 현상 조짐마저 보인다. 우리가 미국처럼 총기 규제가 거의 없는 나라였다면 어땠을까? 등골이 오싹해지는 상상까지 하게 될 정도다.

그렇다면 양당이 비슷해질 것이라는 이론과 두 세력이 오히려 완전히 등을 돌린 현실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일단 유권자의 분포가 가운데가 두껍고 뾰족한 종 모양(정규분포)을 하고 있다는 가정은 현실적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늘 여론과 선택의 중심이 되는 것은 아니다. 종의 양쪽 끝에 위치한 소수는 자신들의 이해 때문에 누구보다도 더 소리 높여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그런 목소리가 과장된 것이 아니라 매력적인 것으로 비쳐질 때 중도 다수는 극단 세력에 휘둘리고 만다. 몸통이 꼬리의 볼모로 전락해버리는 것이다. 1인1표제의 민주주의 하에서 이는 경제학자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바다.

한반도가 그렇지만 특히 제주는 이념 양극화의 폐해를 뼈저리게 경험한 곳이다. 하필이면 각종 제주 지역 현안들이 이념 양극화의 상징적 예로 부상하고 있다. 자칫하다가는 소수의 극단적 목소리가 주도해, 지역 사회를 둘로 결단내 버릴 수도 있는 형국이다. 그 일을 막을 유일한 방법은 제주의 침묵하는 다수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수밖에는 없다. 상식과 합리에 기초한 목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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