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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담론]'순이삼촌'과 4·3트라우마센터허영선 시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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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07-09 (화) 18:59:26 | 승인 2013-07-09 (화) 18:59:26 | 최종수정 2013-07-09 (화) 18:59:45

   
 
     
 
그런 것이다. 4·3은. 당시 열 세 살. 남부럽지 않던 막내딸. 느닷없이 몰아친 4·3바람이 그렇게 덮치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해 겨울, 화북국민학교를 불태우던 날, 총상에 쓰러지던 사람들. 아버지 언니 오빠 올케 조카 둘이 떠났다. 구사일생, 살아난 소녀는 일곱발의 총상을 입고 후유증에 시달리며 살다가신 어머니의 모습을 평생 지울 수 없다.

잊어선 안된다. 그때의 일을 차곡차곡 다 일기장에 새겼다. 허나 시집 오기 삼사일 전, 독한 마음 먹었다. 이제 일기장을 불태워버리면 4·3은 간 곳 온 곳 다 없어진다. 마음에서도 없어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4·3은 다시 그녀를 따라오지 않을 거라 믿었다. "경헌디 80나도록 4·3은 나 뒤에 따라오는 기분이라마씀." 운동장에서 군인들이 집합 출발시켰던 끔찍한 그날을 잊지 못한다. 호루라기, 차 소리만 나면 발발발 떨리며 구토증이 나오고,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숨고만 싶었단다. 그 여인, 김인근의 트라우마는 지금도 이어진다.

그런 것이다. 4·3은.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것. 오래도록 살아남아 산자를 아프게 한다. 4·3의 광풍으로 열다섯 소년가장이 된 김명원. 의귀국민학교 집단학살 현장에서 희생된 어머니와 어딘가서 죽어간 아버지. 소년의 품에서 숨을 거둔 갓난 동생. 수양딸로 보내진 여동생도 있다. 못 배운 게 한이고 동생들 잘 거두지 못한 게 한스럽다는 그 소년, 이제 손자에게 4·3을 전하는 할아버지가 됐다. "평생 난 죄인이 된 거라 마씀. 내가 사람을 죽인 것 보다 더 무서운 죄책감이 오죠. 지금도 그때 악몽을 꾸다 잠에서 깨면 그때 그 생각 뿐. 사난 살암주. 보상이 문제가 아니우다. 내 몸이, 내 마음이 괴로운데…"

그녀를 생각한다. 북촌리 4·3대학살에 남편과 두 아이를 잃고, 그 학살터에서 떼죽음을 목격하고 홀로 살아남은 여인. 남편이 없다고 만삭에 가해지던 모진 고문, 끝내 뱃속 아이 마저 잃고 사는 생이 어디 온전했겠는가. 이후 환청과 강박증, 신경쇠약, 결벽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생을 놓아버린 이 여인 '순이삼촌'. 우리 4·3문학의 시발점이자 상징이된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은 그렇게 4·3을 감금한, 30년 역사의 봉인을 연 이름이다.

우리 앞에는 이러한 정신적인 외상, 트라우마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고통스런 삶을 살다간 우리의 '순이삼촌'들이 계시다. 또 다른 '순이삼촌'들을 만난다. 그들은 서러운 것 토하고나서 그런다. "이제사 속이 조금은 시원허우다"

아무 것도 모르던 팔롱팔롱하던 사람들에 가해지던 참혹한 그해 겨울의 죽음들, 남편 없는 여인들에 가해진 고문들, 수형인으로 끌려간 삼촌들,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하겠는가. 산 자들의 트라우마는 악몽이나 가위눌림, 죄책감 같은 여러 양태로 드러난다.

그 가혹한 세월동안 가슴을 누른 용암덩이를 달고 사는 사람들. 트라우마는 어떻게 치유해야 하나. 그들의 경험을 들을 때마다 함께 저리다. 트라우마는 직접 목격한 2세, 그리고 3세에게도 전이된다. 아니다.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따라붙는 4·3에 사는 제주섬 전체가 트라우마를 겪는 건 아닐까.

이번 통과된 4·3특별법개정안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정부는 법안 심사과정에서 4·3트라우마 치유센터 설립을 약속했다. 늦었으나, 많이 늦었으나 정신적 아픔을 치유하는 따스한 공간이 생긴다는 것은 다행스럽다. 하여 꿈꾼다. 살아남아 무거워진 가슴들이 가벼워지기를. 아마 억울하게 떠난 수많은 삼촌들도 그러하리. 후대는 다만 행복해지기를. 허나  트라우마 치유센터는 어느 입장에서 만들어야 할 것인지 진정성 위에서 추진돼야 할 일이다.

마침 12일과 13일 연극 「순이삼촌」이 제주도문예회관대극장에 올려진다는 소식이다. 서울에서 이미 올려져 객석에 먹먹함을 준 「순이삼촌」, 4·3트라우마의 현장에서 올려진다는데 의미가 깊다. 그런 것이다. 4·3은. 이제 현대사 속에서 하나의 기호로 인식되지만, 우리에게 평화와 인권, 희망을 읽게 하는 기호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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