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권 제주관광대학교 인테리어건축과 교수·논설위원

   
 
     
 
근대건축 유산은 근대 이래. 우리 삶이 담겨 있는 문화재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가까워 더 친밀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나 4·3의 아프고 고통스러운 기억이 담겨 있는 특수성으로 인해 소홀하게 다뤄지는 측면이 없지 않다. 더욱이 급속한 산업화·도시화가 이뤄지면서 도시에 위치한 근대 건축은 재개발에 따른 여파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고 도시 외곽에 위치한 근대건축은 방치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얼마 전 제주시 삼도2동 관덕정 인근에 위치한 옛 제주시청사가 철거되면서 역사적 등록문화재 하나가 사라졌다. 제주읍이 제주시로 승격되면서 지어진 역사적 의미가 담긴 건축물이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했다. 이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제주 근대 건축유산의 보존과 활용에 대한 대책 수립이 절실한 시점이다.

2003년 제주도에서 작성된 '제주도 근대문화유산 조사 및 목록화 보고서'에 의하면 제주 전역에 분포돼 있는 근대문화유산은 총 214곳으로 그 절반가량이 건축물이다. 건축물은 주로 관청과 같은 업무시설·군사시설·종교시설·상업시설·공업시설·의료시설·주거시설 등이다. 또한 2001년 등록문화재 제도가 도입되면서 2003년 제주지역에 분포돼 있는 근대건축물은 현 제주 시청사와 이승만 별장 등을 비롯해 총 11곳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지난해 말까지 집계된 등록문화재는 총 21곳으로 등록 건수는 처음보다 두 배가 증가했지만 10년 동안 이미 재건축으로 사라져버렸거나 허술하게 방치된 건축물도 있다.

등록문화재의 도입 취지는 기존 문화유산제도에 의한 엄격한 규제와 보호와는 달리 소유자가 자발적으로 잘 보존하도록 유도하고, 일상생활과 다양한 문화를 연계해 보존과 동시에 활용방안을 모색할 수 있도록 제정됐다. 그러나 근대건축유산의 경우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문화적 가치와 생활이 변화함에 따라 당시 기능 및 구조체계 역시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건축물 대부분이 건립 당시의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원형 그대로 보존하기에는 무리가 따르고 형태나 기능이 시대 변화에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근대건축유산 논의는 '보존이냐 철거냐'하는 것으로 쟁점화 됐다. 이는 '무엇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와 같이 보존의 가치기준을 세우기보다는 외형적 측면만을 논의로 삼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근대건축유산의 경우 어떻게 가치를 부여할 것인가에 따라 보존과 활용방안이 달라질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현재까지는 이를 명확하게 규정할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다. 따라서 근대건축유산의 보존과 활용을 위해 몇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먼저 근대건축유산의 보존은 단순한 문화재 지정이나 예산 투입을 통한 건축 리모델링이 아닌 근대의 역사 환경과 현대의 지역민이 소통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근대건축유산이 단순한 감상 대상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현시대의 우리가 배울 점을 생각해 보고, 부끄러운 역사 속의 건물은 다시는 과오를 범하지 않으려는 성찰의 기회를 마련하는 등 시민 스스로 참여하는 현장이어야 한다.

다음으로 근대건축유산의 활용 면에서도 관광자원으로뿐만 아니라 그 지역 사람들에게 필요한 용도와 기능을 마련하여 주민들이 그 속에서 생활하는 공간, 지역의 삶을 담는 공간으로 활용돼야 한다. 근대 건축유산은 우리 마을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 도시화, 근대화를 이루던 시대를 증언하면서 고유한 장소와 풍경을 만들어내는 원천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따라서 근대건축유산은 단순히 특정 시기에 만들어진 오래된 건물이 아니라 그 곳에 얽힌 기억과 역사, 그리고 시민들이 향유하는 장소로써 평가돼야 한다.

그러므로 근대건축물을 하나의 '점'이 아니라 지역의 풍경과 기억 속에서 하나의 '면'으로 인식시키기 위한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예를 들어 근대건축유산 별로 박물관·도서관·전시공연장·여가 및 휴식 공간 등 각각의 용도를 부여하고 이것을 하나로 연결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민들이 그곳에서 역사를 배우고 소통하는 장소로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