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KBS 1라디오 진행자·논설위원

   
 
     
 
여기 두 개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있다. 하나는 정글에서의 생존기다. 이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불을 피우기 위해 몇 시간씩 안간힘을 쓴다. 그런데 뒤편에 선 한 참가자의 손에 담배가 들려 있다. 그런가 하면 남성들이 군 생활을 체험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도 있다. 여기서 한 참가자는 훈련 중 어깨를 다친다. 그런데도 계속 병영 생활을 고집한다. 군의관이 간곡하게 만류하고 나서야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해당 부대에서 퇴소한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두 프로그램의 문제적 장면에서 차이는 뭘까? 시청자들이 느낄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진정성이다. 해당 프로그램과 참가자들이 진심으로 힘든 환경이 주는 고통을 받아들이려고 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다. 정글 생존기는 담배 장면이 나가고 나서 바로 해명했다. 불을 쉽게 피워놓고 어렵게 피운 것처럼 조작하지는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참가자가 담배를 든 영상 편집을 제대로 하지 않은 제작진의 실수일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해명조차도 프로그램이나 참가자들의 진정성을 되살리지는 못 했다. 힘든 정글 환경에서 무엇이든 참가자들 힘으로 해결한다고 믿는 시청자들로서는 배신감을 느낄 만 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요즘 시청자들은 어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든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으면 외면한다. 반면 진정성이 느껴지는 프로그램은 승승장구 하고 있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부활도 이와 관련이 깊다. 이 프로그램의 인기 코너 '진짜 사나이'나 '아빠, 어디가?'는 모두 진정성에 기초한 프로그램이다.

방송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최근 마케팅 분야에서는 진정성을 가장 중시하는 추세다. 진심을 담은 진짜 이야기만 통한다는 것이다. 사소한 것이라도 소비자들을 기만하고 우롱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진정성이 각광을 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정부나 기업, 지방자치단체들은 광고를 포함해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쓴다. 한 마디로 마케팅 과잉 시대다. 반면 소비자들은 전보다 훨씬 더 까다롭게 마케팅 내용을 검증하고 알린다. 그러니 진짜가 아닌 이야기는 역효과를 낼 수밖에 없다.

진정성은 마케팅의 주체가 강변한다고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주도는 7대 자연경관 프로젝트를 통해 제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고자 하고자 했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주체나 진행과정 상 진정성을 인정받기는 역부족이었다. 반면 제주의 민간 부문이 시작한 올레는 조직적 동원 없이도 진정성을 인정받았다. 그 차이가 무엇이었을까?

마케팅 전문가들은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세 가지 요소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로 자연성(친환경성)·독창성·특별함이다. 소비자들이 마케팅 주체의 진심을 믿기 위해서는 자연과 사회에 대한 기여 외에도 남들이 하지 않는 방식으로, 소비자들 개인을 특별하게 배려해야 한다는 뜻이다(독창적인 올레조차도 소비자에 대한 특별한 배려라는 부분은 여전히 부족하다).

제주도는 브랜드 이미지 자체가 자연적이며 친환경적이다. 제주 지역 마케팅에서 늘 부족한 것은 차별화된 방식으로 특정 소비자들을 배려하는 부분이다.

영국의 명문 프로축구 구단 아스널팀은 지난 달 아시아 투어를 했다. 이 팀이 베트남에 들렀을 때 한 청년은 선수들을 실은 버스를 따라 무려 5㎞나 뛰었다. 이 장면은 선수들에 의해 촬영돼 유튜브와 외신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아스널 팀은 며칠 전 이 진정한 청년 팬을 홈구장으로 초청했다. 이 사연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진정성이 핵심이라는 것을 잘 알고 활용한 진짜 마케팅이었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