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필 제주관광대 사회복지과 겸임교수·논설위원

   
 
     
 
2003년 이후 10년째 63~64%의 고용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사회, 일자리 가뭄의 여파로 목이 탄다. 절박한 상황 속에 정부가 일자리 해갈을 위한 대책을 내 놓았다. '고용률 70% 로드맵'이 그것이다.

주요내용은 향후 5년간 일자리 238만개를 새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일자리 238만개 중 38%, 92만 여개의 일자리는 기존 근로자의 노동시간을 줄여서 '시간제 일자리'로 만들겠다고 한다. 이 시간제 일자리가 불볕보다 더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정부가 일자리를 쏟아 내겠다는데, 정작 일자리에 목이 타들어가는 사람들은 환호하지 않는다. "겨우 시간제? 너나 하세요"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고용의 질을 떨어뜨리려는 것이냐는 실망스런 반응이다.

시간제 일자리의 처우를 살펴보면 그럴 만하다. 시간제 근로는 비정규 근로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일자리다. 시간제 근로자 대부분은 사회보험 혜택이 없다. 상여금과 퇴직금을 받는 비율 10%, 시간외수당이나 유급휴가를 적용받는 경우 6%이다. 2013년 3월 기준 임금을 보면, 정규직 253만3000원, 비정규직 141만2000원, 시간제 근로자는 65만1000원에 불과하다.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 대비 2006년 62.3%에서 2012년 50.7%로 급락했다. 시간제 일자리의 질이 더욱 악화되고 있으며 장점을 찾아보긴 힘들다.

정부는 시간제 일자리를 '양질의 반듯한 일자리'로 만들겠다고 한다. 정규직과 차별이 없고 정년이 보장되고 근로시간 비례보호 원칙에 따라 시간당 임금, 4대 보험, 승진·정년, 기타 근로조건과 복리후생이 정규직과 차별이 없는 일자리라고 한다. 이를 보장하기 위해 올해에 '시간제 근로 보호법'을 제정할 계획도 갖고 있다. 시간제 일자리가 모든 면에서 정규직과 차별이 없고 정규직처럼 정년이 보장된다면, 매우 바람직한 근로형태임에 분명하다. 주 3일 혹은 오전 근무만 하면서도 정규직과 같은 대우를 받으며 평생 일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신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실현가능성이다. 정부는 네덜란드를 말한다. 네덜란드는 노·사·정이 타협해 '바세나르 협약'을 성사시켰다. 이 협약에 의해 시간제 일자리가 단기간에 대폭 증가하면서  63.9%였던 고용률이 70.8%까지 뛰어 올랐다. 고용률 70%진입 시기에 경제도 연평균 3.7% 성장했다. '일자리증가→경제 활성→일자리창출→경제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그려낸 것이다. 이 성공한 네덜란드를 벤치마킹하겠다는 것이 정부 복안이다.

네덜란드를 일자리 위기에서 구한 기적의 '바세나르 협약'은 노·사의 양보, 정치 지도자들의 열정이 만들어낸 쾌거이다. 노동계는 임금동결, 기업은 일자리 공급, 정부는 소통의 프로세스를 만들었기에 가능했다.

우리나라 노·사·정이 이 같은 합의를 끌어낼 수 있을까.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가 늘기 위해선 기업과 노동계의 양보, 정치권의 리더십이 필수요건이다. 그러나 기업은 기존의 시간제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정규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연간 약 7.2조원의 부담이 발생된다며 벌써 노동비용의 상승을 우려하고 있다. 노동계는 근로시간 축소로 임금이 줄어들 경우 삶의 질 저하로 연결될 수 있다고 하며 양보할 뜻이 없음을 에둘러대고 있다. '고용률 70%달성'을 노래하지만 정치 생명을 걸고 노사를 설득하겠다고 나서는 지도자는 없다.

'양질의 반듯한 시간제일자리 창출'을 위해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높다. 일자리 창출은 노·사·정이 함께 만들어가는 오케스트라이다. 관악기·현악기·타악기의 서로 다른 악기가 조화를 이뤄 아름다운 소리를 내듯이 노·사·정이라는 오케스트라도 각각의 목소리가 하나의 타협된 소리로 모아져야 할 것이다. 노·사는 나눔과 배려를, 정부는 강약과 속도를 조절하며 멋진 일자리 행진곡을 연주해 주길 바란다. 일자리 행진곡이 기립박수를 받는다면, '경제성장'이라는 보너스를 후하게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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