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민철 사회부장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세치 혀'로 세상을 손 안에 놓고 주무른 세객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합종책을 제시한 '소진'과 연횡책을 주창한 '장의'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세상을 혀 하나로 마음대로 좌지우지 했던 만큼 그 인생도 화려할 것 같지만 실제 삶은 비극 그 자체였다. 장의는 진나라에서 실각한 후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위나라로 망명했다 늙어 죽었고, 소진은 자객에 의해 암살당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웃나라를 설득하러 갔다가 끓는 물에서 인생을 마감한 '역이기' 같은 세객들도 고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많은 세객들의 종말이 비참했던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어눌하지만 진심이 담김 '눌변'이 아닌 겉만 화려하게 포장된 '달변'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화려한 미사어구와 치밀한 논리를 앞세워도 그들의 모습에서 '진정성'이 엿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상대방의 불신과 분노를 샀던 것이다. 못생긴 유기농 먹거리보다 반짝 반짝 윤이 나는 농약 먹거리가 보기에 좋아 보이지만 결국 소비자들은 더 비싼 돈을 내고 유기농을 찾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도 옛 세객들은 자신의 말에 품격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 말 속에 상대방을 속이려는 의도가 담겨있지만 노골적인 조롱이나 터무니없는 선전은 하지 않았다. 말 한마디에도 정성을 담아 상대방을 설득하려 했다.

요즘 여의도 정치권이 시끄럽다. 국정원 댓글사건 국회 국정조사부터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실종 검찰 수사 등으로 하루가 멀다하고 여야의 공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들처럼 섬뜩한 말로 상대의 인격을 훼손하는 일까지 난무하고 있는 현실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노자도덕경을 보면 '도지출구 담호 기무미'(道之出口 淡乎 其無味)라는 글귀가 나온다. '도인에게서 나오는 말은 맑고 담백하니 아무 맛도 없다'라는 뜻이다. 즉 도인이 말하는 깨달음이나 도에 관한 말은 너무나 평범하고 재미가 없어서, 사람들이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히려 감각적 쾌락을 자극하는 오락이나 맛난 음식에만 눈길을 준다는 것이다. "눌변이 달변이다"라는 말이 바로 여기서 나온다. 이전투구로 치닫는 우리 정치권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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