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영 제주여성인력개발센터 관장·논설위원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이상과 현실은 정말 친하지 않은 것 같다. 아무리 좋은 취지로 도입된 제도라 하더라도 현실에선 '외면'받기 십상이다. 지난 1일로 의무시행 1주년을 맞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예외는 아니다. 이는 만 6세 이하 초등학교 취학 전 자녀를 둔 부모 누구나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대신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 일도 하고 애도 돌볼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근로자의 입장에선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을 예방할 수 있고 회사 차원에선 경력자의 결원을 막을 수 있어 모두 '윈·윈'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현실에선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눈치' 때문에 이용하기 어려워 '그림의 떡'으로 전락하고 있다.

최근 정부는 창조경제를 실현, 일자리 창출과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2017년까지 일자리 238만개 창출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현재 63~64%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고용률을 박근혜정부 임기 내 7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그리고 '고용률 70% 달성 로드맵'의 핵심정책은 '시간제 근로'의 본격 확대 추진이다.

이에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처럼 다가올 '현실'을 우려하며 개선책을 고민해 본다. 우선 관행적으로 시간제 일자리는 곧 임시직이라고 인식되는 우리나라의 고용환경에서는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 만들기가 여간 쉽지 않아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는 네덜란드에 비해 약 3분의 1, 스위스에 비해서는 2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시간제 근로 비중이 낮다. 당연히 열악한 처우를 받는 시간제 근로제를 외면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근로자의 현실은 더욱 열악하다. 여성근로자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체 시간제 근로자의 70%를 넘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2년 81만명이었던 시간제 일자리 규모가 2012년 182만6000명으로 125.4% 증가하는 사이 여성 근로자는 2002년 57만9000명(전체의 71.5%)에서 2012년 132만명(〃72.3%)으로 크게 늘어났다.

특히 시간제 근로자 중 기혼 여성의 경우 비자발적 근로자 비율이 58.9%에 달했다. 특히 이들 중 고용보험에 가입한 경우는 14.8%에 불과했다. 임금도 비정규직의 43%, 정규직의 25%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등 그야말로 '나쁜' 시간제 근로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지난해 '기혼 여성의 시간제 근로 보고서'를 통해 2012년 기준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68% 수준에 불과하고 시간제 근로 기혼여성의 58%가 저임금 상태에 있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고용정책과 일자리 사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 가사와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을 겪고 있다. 취업하더라도 2년 이상 근무하면 무기계약이 되는 조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간제로 '강제' 전환되거나 고용보험에도 가입되지 않는 등 시간제의 열악한 상황은 서러움을 넘어설 정도다. 고학력 경력단절 여성들이 쉽게 경제활동에 재진입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의 하나다.

결국 정부가 강조하는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 확대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일제 근로자의 근로시간 단축청구권과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부터 보장돼야 한다고 본다. 경력단절 예방을 위한 필수사항이다. 이것은 여성에게만 국한되는 우대정책이 아니다.

기존 제도를 정착시키지 못한 채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은 모래성 쌓기나 다름없다고 본다. 이제 노동현장에서 차별받고 있는 수많은 시간제 근로자들의 문제점을 되짚어보고 개선해야 한다. 임금과 승진, 복지혜택 등에서 전일제 노동자와의 차별을 없애는 노력이 필요하다. 더불어 경력이 단절되지 않도록 일과 가정 양립을 위한 정책 지원과 기업과 지역사회, 여성 등 사회 구성원 모두의 노력이 중요하다.

고용안정성이 담보되지 않는 시간제 일자리 확대는 객반위주(客反爲主)가 될 가능성이 크다. 고용률 70% 달성, 숫자에 매몰되지 않고 진정으로 국민의 행복이 담보되는 고용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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