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웅 논설위원 겸 동부지사장

   
 
     
 
언제나 지구를 구하는 승자는 슈퍼맨(Superman)이었다. 몸에 꼭 달라붙는 파란색 상하의에 빨간색 팬티를 입은 모습이 민망하긴 하지만 슈퍼맨이 악당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슈퍼 파워' 덕분이었다.

그런데 미국에선 지구를 살렸던 슈퍼파워가 2013년 대한민국에선 '갑'과 붙어 가장 비열하고 악랄한 단어 가운데 하나로 전락해 버렸다. '슈퍼갑'이 그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공인' 슈퍼갑 1호는 남양유업이다. '갑의 횡포'에 대한 비난이 우리 사회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슈퍼갑의 폐해를 공공연하게 세상에 알린 것은 남양유업이다.

지난 5월 대한민국은 한 통의 전화녹취록에 분노했다. 남양유업의 30대 영업팀장이 아버지뻘인 50대 대리점주에게 '밀어내기(제품 강매)'를 하며 쏟아낸 막말이 고스란히 인터넷과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확산됐다. "(물건 받지 않으면) 죽여버린다" "(영업이 힘들다고 하자) 망하라구요" 등 입에 담기 힘든 욕설과 모독적인 말이었다. 남양유업 사태가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공연한 비밀'이었던 편의점과 화장품 업계 등에서도 대기업의 불공정행위가 잇따라 터져 나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갑을문화' 타파 등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단 남양유업 사태는 지난달 회사와 대리점협의회간의 최종 협상을 통해 합의했다. 가맹점주들의 자살로 물의를 빚었던 편의점 업계에선 자율분쟁해결센터 등 다양한 상생방안을 내놓았다. 갑의 횡포를 막기 위한 법 등 제도적 장치도 마련됐다. 비록 여론과 검찰 수사 등 '외압'이 없진 않았지만 남양유업에서 촉발된 '갑을 논란'은 해피엔딩으로 일단락되는 모습이다.

그런데 제주특별자치도가 '슈퍼갑'의 횡포와 등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개선책이 시급하다. 사사건건 제주도의 정책에 제동을 거는 기획재정부 얘기다. 남양유업은 여론이라는 눈치를 보기도 했으나 기재부는 막무가내다. 국회 의결도, 상위 기구의 결정도 모르쇠다.

무엇보다 관광객 부가가치세 환급제다. 관광객이 제주에서 구입·소비하는 관광비용 중 부가세 10%를 환급해주는 제도다. 환급액만큼 낮아진 경비로 제주관광의 가격 경쟁력을 제고시켜 동북아시아의 관광허브로 키워나간다는 정부의 방침 아래 추진됐다.

2009년 12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각 부처 장관과 제주도지사 등으로 구성된 제주도지원위원회에서 도입이 의결됐다. 2011년4월 제주특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 시행이 확정됐다. 그런데 기재부가 후속조치인 조세특례제한특별법을 개정하지 않는 바람에 아직까지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반대 논리는 타 지역과의 형평성 등 뻔한 레퍼토리다.

3단계 4·3평화공원 조성사업도 마찬가지다. 2000년 시작, 순조롭게 마무리된 1·2단계 사업에 이어 3단계는 120억원의 사업비로 2012~2013년 추진 예정이었으나 역시 기재부에 막혀 시작도 못하고 있다. 기재부는 3단계 사업을 축소, 30억원 수준에서 마무리할 것을 고집하고 있다. 제주도가 이를 거부하자 지난해 예산 30억원에 이어 올해 예산 30억원도 배정하지 않고 있다.

결국 '슈퍼갑' 기재부는 제주의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에 큰 방해물로 전락하는 셈이다. 적지 않은 사업비로 4·3공원사업 등을 추진해온 이유는 반세기 넘게 진행 중인 4·3의 비극에 마침표를 찍기 위한 최소한의 최선책이기 때문이다. 또한 관광객부가세 환급제는 오늘의 제주관광의 경쟁력을 높여 보다 나은 미래를 갈 수 있는 길인데 기재부가 가로 막고 있다. 기재부가 대한민국 국정의 전부인 줄 착각하고 있다. 각 부처 장관은 물론 국무총리로 구성된 조직에서 의결되고, 국회에서 법으로 결정된 정책 이행을 거부하는 것은 항명에 다름 아니다.

더 이상 묵과해선 안될 일이다. 국정의 틀에서 결정된 사항에 일개 부처에서 '토'를 다는 일이 용납돼선 안된다. 국회의 권위와 통치자의 영(令)을 보여줘야 한다. '슈퍼갑' 기재부의 관료주의 타파에는 입법·사법부 따로 없다고 본다. 국민을 대신하는 국회와 행정부의 결정을 이행하지 않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젠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슈퍼갑의 횡포가 척결돼야 한다. 그리고 제주도의 미래를 위해선 그것이 반드시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함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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