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주 봉성교회 목사·논설위원

   
 
     
 
낙지살인사건. 지난주에 다시 세인의 주목을 끈 사건이다. 여러 해 이전에 일어난 일이지만, 대법원의 최종판결이 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 심증이 분명하지만, 물증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얘기다. 대신, 법정에서 공방이 벌어질 때, 정황증거만으로는 아무런 힘을 얻지 못한다는 원칙이 다시 확인됐다. 이제는 확실한 증거 없이는 누구를 정죄하거나 형벌을 가하기가 어렵다는 것으로, 위안이 되기는 한다. 터무니없이 법정에 서거나 형벌을 받을 우려는 줄어들었다. 하지만 완전범죄를 노리는 흉악한 꾀는 더 불어나지 않을지 걱정이다.

교학사 국사 교과서. 절차를 따라서 검정을 통과했다고 하지만, 허점이 많은 것이 알려지면서 비난을 받고 있다. 대표 저자는 일본에서 공부하면서 익힌 방법으로 논리를 구성하고 자료들을 구성했다. 이에 따라 일제강점기의 토목공사와 사회조직은 우리 민족사에 득이 됐다는 논리를 유지한다. 과거 권위주위 정권들의 공적을 강조하면서, 그 과오들은 무시하거나 축소했다. 엄혹한 세월에 민주화의 과정에서 희생을 치른 사람이 어디 한둘이었나? 그 교과서를 그대로 배운 학생이 있다면, 수능에서 절반밖에 정답을 내지 못한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과거 역사에 대한 우리사회의 대체적인 합의가 아직도 이뤄지지 못한 것일까? 더군다나 4·3사건에 대한 이 교과서의 편협한 입장이 알려지면서, 제주도민들이 크게 분노하고 있다. 오랜 암흑의 세월을 거쳐서 최근에야 이뤄진 합의를 무시하고 최소한의 배려도 하지 못하고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 한단 말인가.

채동욱 검찰총장의 진퇴.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계속 이어지던 긴장과 논쟁은 이제 정점에 올라선 듯하다. 공정하지 못한 대통령 선거관리, 정보기관의 선거개입 등의 의혹은 말끔히 해소되거나 정리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온갖 주장들이 난무했다. 국정원은 내란음모를 검거한다면서 본연의 임무를 찾은 것처럼 활약하려 한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권력을 남용해 부를 축적한 것을 환수하는 일도 진전될 단계이다. 이 모든 일의 핵심에 서 있는 검찰총장이, 오히려 혼외자의 존재여부를 놓고서 의혹의 중심에 서게 됐다. 그의 진퇴여부를 놓고서 그 승부가 초읽기가 시작됐다.

대중들은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 어찌 대중들뿐이랴. 지식인들도, 심지어 꽤 전문가로 인정받는 사람들도 열심히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강변하는 세상이다. 얼마 안 가서 탄로 날 거짓말에 목을 매는 사람들도 생겨난다. 자신은 진실로 납득하고서 내뱉는 이야기인지 의심스러운 대목도 꽤 있는 듯하다.

거짓 예언자들을 가려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성서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된다고 가르쳐 준다. 그 말 그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참 예언자이고, 이뤄지지 않는다면 거짓 예언자라는 논리이다. 이런 말은 당장 판단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현실은 드라마보다도 더 극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대극 대부분이 막장이라 할 만큼 우연과 작위적인 구성으로 꾸며진다. 역사극들도 많은 복선을 준비해 놓고 시청자들과 게임을 하고 있다. 궁금해서 다음 이야기를 꼭 기다리도록 만든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대부분의 드라마에 있어 시청자가 극중 인물에 비해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결말을 이끌어낼 비밀도 일부분 알고 있다. 주인공은 아직 자기 운명을 모르는데 말이다.

한국의 정치 현실이 드라마처럼 긴장으로 차 있고, 반전을 거듭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불안하다. 극중에 맹수가 등장하는 것은 재미있는 장면일 수 있다. 모든 위험요소가 제거된 채, 안정된 촬영환경이 최악의 순간을 막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들짐승을 맞닥뜨리면 목숨을 걸고 판단해야 한다. 아무런 사고도 없이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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