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웅 논설실장

   
 
     
 
노무현 전대통령이 4년 중임제 대통령제 개헌을 제안했다가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참 나쁜 대통령'으로 내 몰린 적이 있었다. '참 나쁜'이라는 표현은 이후 언론에 종종 등장하고 있다. 요즘 제주도내에서서 벌어지고 있는 전·현직 지사들의 행태를 보면 '참 나쁜'은 아니더라도 '참 욕심 많은'이라는 표현을 써도 무방해보인다. 내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현직지사 3명 모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구범 전지사는 16일 2014년 도지사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제주사회를 마비시키고 분열시켜온 공작정치를 더 이상 방관하거나 기피하지 않고 자존·번영의 100만 제주시대를 열겠다는 것이 주된 출마변이다. 이보다 앞서 김태환 전지사는 지난달 30일 전·현직 도지사 3명이 제주사회의 세대교체와 사회통합,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내년 지방선거에 불출마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그러면서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출마할 수 있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우근민 현직 지사 역시 새누리당 입당 여부를 타진한 것으로 확인되는 등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보면 내년 지방선거 출마가 확실시된다는 분석이 높다. 전·현직 지사 3명이 동시에 출마하는 초유의 형국이 전개될 수 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도민들의 시선은 결코 곱지 않아 보인다. 이들은 제주판 '양김' '3김'으로 불리우며 제주도지사직을 2~5번씩 역임했다. 이들이 내세우고 있는 제주도에 대한 공헌도 나름대로든 객관적인 시각이든 평가할 만한 부문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어느 지도자치고 열정과 추진력이 없으련만 이들의 제주도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다고 인정해주자. 그러나 이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4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을 지사로 보내면서 도민사회에 부정적인 유산은 함께 남긴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이들이 제주사회를 온통 갈등과 반목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라는 지적은 현실이다.

'우파''신파''김파'는 좋게 말하면 이들과 정치노선을 같이하고 따르는 인사들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이들을 정점으로 한 맹목적이고 이해타산적인 패거리에 다름 아니다. 특히 공직사회는 '내편'과 '네편'으로 줄서기가 강요당하면서 심각한 부작용을 양산했고 그 후유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 세력 간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전쟁'은 갈등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제주발전에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이 때문에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분열의 역사를 끝내고 제주특별자치도를 통한 제주국제자유도시호가 순항하기 위해서는 이들 3명이 화해하고 손을 잡아야 한다는데 동의하는 도민이 많다. 더 이상 이들 세분의 인품과 능력이 평가 절하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제는 원로로 남아있어야 한다는 도민들의 여망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희망은 이제 루비콘 강을 건넌 것처럼 보여진다. 이들 3명은 나란히 1942년 동갑내기다. 내년이면 모두 72세다. 단순한 생물학적 나이가 중요한건 아니지만 이제는 후배들에게 물려줄 때도 되지 않나 싶다. 전·현직 지사들을 의도적으로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라 제주도의 새로운 발전을 위한 원동력 제공을 위해 신진대사를 이루어보자는 것이다. 과거 질서와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혼란과 이익대립을 종식시켜 새로운 발전전략을 실천할 수 있는 리더십은 아무래도 지도연령의 갱신과 저하가 낫다는 생각이 든다. 왜 이들 3명은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고만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도민들도 왜 맡겨보지도 않으면서 인물만 없다고 하는지 답답할 노릇이다. 이들의 직업이 만년 '도지사'도 아니지 않은가.

교과서에 나오는 시 중에 조병화시인의 '의자'가 있다. 그 시 중에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습니다'는 구절이 있다. 세대교체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담담하면서도 진지한 어조로 표현하고 있다. 이 시처럼 우리가 못다 한 새 역사를 꾸밀 새 희망의 신세대를 위해 우리가 앉아 있는 자리를 언젠가는 기꺼이 물려주어야 한다. 이들 세분의 전·현직 지사들이 음미해볼 대목이다. 부디 후세에 '참 나쁜 도지사들'이라고 손가락질 당하는 불명예를 쓰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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