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의보 속의 출항

눈발속 감귤선은 떠나고

나는 평소 우리 나라 최남단의 작가로서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북한을 다녀 오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사명감과도 같은 것이었는데, 여러해 전 소설가협회의 동료들과 함께 연길을 거쳐 백두산엘 올랐던 것도 그런 염원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나 되레 감질만 나게 했다.

그러던 차에 북한에 감귤 보내기 운동본부가 제주도민들에게 귤과 성금들을 모으기 시작할 때 "기회는 지금이다!" 하는 생각을 굳혔다. 마침 출석하는 교회의 김정서 목사님이 이 운동본부의 본부장이 된 것은 나의 뜻을 이루는데 직접적인 도움이 되었다. 나는 이 기회에 북한엘 가고 싶다는 요청을 했고, 그 뜻은 곧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번 일이 누구에게도 경험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출발까지의 과정만 해도 그리 수월한 것은 아니었다. 우선은 '북한'도 외국으로 취급이 되어서 여권을 만들고, 방북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일관성 있게 제도화 해있지 않아서 도의 여권과에서는 "우리 나라인데 안 해도 된다."는 견해였으나 최종적으로는 여권을 만들어야 되었다. 그리고 방북에 앞서 통일원교육원에서의 그 지루한 방북교육, 이런 여러 가지 과정은 출발 전부터 사람을 짜증나고, 지치게 만들어 버렸다.

게다가 당초 1월 10일에 출발한다는 것이 날씨까지 궂어서 13일, 14일, 15일로 미뤄지다가 최종적으로 17일 오후에야 배가 출항하게 되었다.

17일, 제주는 폭풍 주의보였다. 아침 뉴스 시간에 예보를 들으며 오늘도 또 글렀군, 하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이런 센 바람 속에 급하게 준비들이 이루어져서 떠나는 사람들끼리 약속한 오후 3시 제주항 제4부두엘 나가니까 그때까지도 대형차량들이 귤을 실어 오거니, 노조원들이 실어온 귤들을 배에 싣거니 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런데 나는 현장에 이르러 싣는 작업을 지켜보면서 순간적으로 아연했다. 당연히 콘테이너에 넣어서 실리는 줄 알았던 귤이 상자째 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리 수집한 귤들은 부패해 있어서 더러 물량장에 쌓아 내버린 채였다.

어쨌거나 이런 속에도 '북한에 사랑의 감귤 보내기 3차 출항식' 만은 성대했다. 눈발 섞인 맵짠 바람 속에 입 가진 사람들이 모두들 한마디씩 하고, 오색 풍선들을 날리고, 주의보 속 파고 2~3 미터의 바다 속으로 배는 떠나가기 시작했다. 실은 감귤 416톤(1차 350톤, 2차 300톤 포함 모두 1,050톤). 이 귤을 안전수송하기 위해 김선희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기획부장과 양유진 북제주군연합청년회장, 그리고 나까지 세 사람이 동승해 있었다.

귤을 실은 화물선은 벨리제 선적의 더블 럭(Double ROC). 선원 8명은 모두 중국 청도 사람들이었는데, 시속은 10키로. 배는 이날 오후 5시 30분에 제주항 등대를 벗어나면서부터 이미 사람을 들볶는 황천항해가 시작되었다. <오성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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