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민철 사회부장

1997년 국내 프로야구는 '적토마' 이병규의 독무대였다. 여기에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거인 박찬호는 LA다저스에서 연승행진을 벌이고 있었다. 같은 해 야구천재 류현진도 인천 창녕초등학교에서 야구를 시작했다. 류현진은 초등학교 시절 체격이 작아 주전 자리는 꿈도 꾸지 못했다.

야구천재 류현진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그의 고교시절부터다. 청룡기 야구대회 8강전에서 성남고를 상대로 17탈삼진 완봉쇼를 펼쳐 프로야구 스카우트들의 눈도장을 받게 된다. 하지만 고교 2학년때 왼쪽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은 전력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이를 반영하듯 당시 동기였던 한기주와 유원상이 프로구단의 1차 지명을 받았지만 그는 한단계 밑으로 평가되며 2차 1순위로 한화의 지명을 받게 된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보니 류현진은 그야말로 야구천재였다. 프로야구에 입문한 2006년 그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국내 프로야구 최초로 MVP와 신인왕을 동시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다승(18승)과 방어율(2.23), 탈삼진(204개) 1위로 투수부문 3관왕을 차지하는가 하면 신인 최다 선발승을 14년 만에 갈아치우고 신인 최다 탈삼진(177개), 최연소 '200이닝-200탈삼진' 기록도 수립했다. 이때부터 류현진 이름앞에 '괴물'이란 별명이 붙기 시작했다.

큰 경기에 강하다는 평가를 받던 류현진은 국제무대에서도 그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예선에서 캐나다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뒀고, 쿠바와의 결승전에서도 8.1이닝 2실점 역투로 한국이 야구에서 올림픽 사상 첫 금메달을 따는데 핵심 역할을 했다.

그런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서 또 대형사고(?)를 쳤다. 역대 한국인 메이저리거 가운데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선발승을 거뒀기 때문이다.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인 박찬호와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2개를 가진 김병현도 이루지 못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괴물투수' 류현진이 세운 것이다. 앞으로 LA 다저스가 챔피언 결정전을 넘어 월드시리즈까지 간다면 류현진의 기록 행진은 계속 이어지게 된다. '괴물투수' 류현진의 새로운 야구역사 만들기가 기대된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