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민 영국왕립건축사, 논설위원

   
 
     
 
바야흐로 스토리의 시대가 됐다.

깜짝 등장한 아이돌 가수보다는 서바이벌 경쟁 프로그램을 통해 수십만명의 경쟁을 어렵게 뚫고 올라온 이들에게 더 많은 갈채를 보낸다. 애완동물 키우는 것보다 더 다루기 힘든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면서도 그가 만들어낸 성공과 실패의 신화에 전세계가 더욱 열광하기도 한다. 2013년의 대한민국은 스토리가 모든 일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

타다오 안도란 일본 건축가가 있다. 건축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받았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한 분이다. 초기엔 오사카의 관서지방을 중심으로 주로 활동했는데 이젠 전세계를 누비며 수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 제주도 예외일 수가 없어서 최근에 지어진 본태박물관을 비롯해 섭지코지에 지어진 박물관과 레스토랑을 설계했다. 세 건축물 모두 수준급 이상이다. 훌륭하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그의 스타일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왠지 모를 아쉬움은 지울 수가 없다. 건축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다. 건축주의 요구와 건축가의 욕심과 주어진 예산의 한계 사이에 치열한 싸움이다. 거기에 공공성에 대한 배려와 허가 과정까지 더해져 아주 치열한 끈들이 서로를 당기며 만들어진 최종 결과물이다. 그런데 이 세 작품에선 그 끈이 좀 느슨하다. 그러다 보니 감동을 받기 어렵다. 그저 쉬운 상대로 케이오승을 이룬 승자 같은 인상이다. 우러러보지만 진심으로 마음이 움직이지는 않는 이유이다.

내가 사는 집 근처에 아주 유명한 만두 집이 하나 있다. 겉모습은 초라하지만 만두 맛 하나만큼은 일품이다. 워낙 별미다 보니 지인들과 자주 가는데 그럴 때마다 사전 정보를 미리 제공해드린다. 만두 맛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간판이 허름하고 공간이 비좁으며 자리는 지저분하고 줄을 길게 서서 기다려야 할 지 모른다는 경고도 빼놓지 않는다. 함께 줄을 서고 오래 기다린 후에 만두 한입 베어 물고 나면 식사를 다 끝내기도 전에 감탄 릴레이가 펼쳐진다. 익히 들었던 소문을 직접 경험하다 보니 맛도 보기 전에 감동할 준비가 돼버린 것이다. 비좁은 자리에 빨리 먹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그저 촉매제일뿐이다.

그런데 최근에 이 집이 같은 동네에 2·3호 점을 더 내게 됐다. 인테리어를 새로 해서 훨씬 깨끗하고 아직 많이 안 알려져서 인지 1호점처럼 줄을 서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곳들이 생긴 것이다. 줄 서서 기다리는 것이 번거롭기도 해서 요즘엔 지인들과 이곳으로 가는데 반응의 정도가 이전 같지 않다. 줄도 서지 않아도 되고 훨씬 쾌적한 환경인데 이게 뭐 그리 유명한 곳이라고들 호들갑이지란 눈치다. 혹시 맛이 많이 다른가 싶어 세 곳의 만두를 사서 비교도 해봤지만 별다른 차이를 알 수 없었다.

그렇다. 사람들은 기다리는 번거로움에다 자리가 좁고 지저분한 것조차 만두 집의 일부로 느낀다. 오히려 그 경험과 스토리로 인해 맛에 대한 점수를 더 후하게 주게 되고 분위기까지 더해 하나의 명소를 만드는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어렵게 문화가 농축된 것을 브랜드라 한다. 이것이 고급화된 상품으로 바뀌면 명품이라 불릴 것이다. 명품은 비싸지만 돈만 주면 살 수 있다. 하지만 물건은 살 수 있어도 그것에 담긴 스토리는 사기 힘들다. 애초부터 남의 것이기에 한계가 있다. 특히 건축과 도시 같이 우리의 환경을 위해 직수입하는 명품 브랜드는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때다. 스토리는 없고 스타일만 있는 건축은 비싸기만 할뿐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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