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석 편집국장

   
 
     
 
올해 대한민국은 '갑(甲)'과 '을(乙)'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사회적 강자인 '갑'이 약자인 '을에'게 횡포를 부리는 갑을논쟁은 아직도 대한민국의 전 분야를 달구고 있다.

'갑'과 '을'은 당초 계약서를 쓸 때 당사자를 순서대로 지칭하던 법률용어이지만 '상하(上下)관계'로 왜곡되면서 힘 있는 자가 힘 없는 자에게 군림하는 현실을 신랄하게 풍자하는데 자주 사용한다.

얼마전 남양유업 본사 직원이 대리점주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 무리하게 요구한 파일이 언론은 물론 유튜브 등 온라인상에 급속히 퍼지면서 소비자 불매운동까지 벌어졌다.

갑의 횡포는 민간기업 분야에만 그치지 않는다. 국민의 세금으로 설립된 공기업도 횡포를 부리는 '갑'의 얼굴로 등장하면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제주지역에서는 한국마사회 산하 제주경마본부가 대표적인 갑의 횡포 사례로 등장했다. 눈물을 흘리는 '을'은 마필관리사들이다. 마필관리사들은 조교사, 기수 또는 교관을 보조해 경주용 말에게 밥을 먹이고, 훈련시키는 등 사실상 모든 것을 관리한다.

하지만 전국경마장 마필관리사 노동조합은 마필관리사들이 마사회가 아닌 개별 조교사와 고용계약을 맺는 '변종 고용'으로 계약을 체결한 결과 수익 불안정, 사고위험 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지만 제주경마본부의 수수방관으로 가슴에 피멍이 들고 있다.

전국경마장 마필관리사 노동조합 등에 따르면 제주경마공원에 마필관리사 100명이 근무하고 있지만 개별조교사와 고용계약을 맺는 변종방식이기에 해고 불안에 떨어야 하고, 수익도 상금을 분배하는 이유로 불안정한 실정이다.

마필관리사들은 근무여건도 열악, 매일 부상위험에 시달리고 있다. 제주경마공원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경주용 '한라마'의 체고(키)를 137㎝로 제한하고, 체고검사 기간도 예전 6개월에서 3개월로 단축한 결과 훈련 강도가 더 높아진 탓이다. 결국 지난 8월 한달에만 마필관리사 13명이 부상을 입었지만 변종방식의 고용계약으로 산재처리를 받지 못했다. 이에따라 노조측이 인력 확충 등 근무환경 개선을 요구했지만 제주경마본부는 "현 고용구조상 마필관리자에 대한 책임이 없다"며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을'의 눈물은 마필관리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마필관리사와 함께 마사회에 많은 수익을 안겨주는 한라마도 '을'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제주조랑말과 외국경주마인 더러브렛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한라마가 경주마로 투입되고 있지만 제주경마본부의 체고제한을 맞추기 위해 말을 굶기거나 말굽을 과도하게 깎는 '동물학대 행위'가 벌어진다는게 노조측의 주장이다.

제주경마본부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하지만 이수길 본부장은 취임사에서 밝힌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본부장은 올해 1월17일 제22대 본부장 취임식에서 "상생호혜의 원칙을 지켜 관련 기관·단체 및 내부 조직원과의 관계에서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닌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에게 주어진 책임과 권한을 다하는 분위기가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본부장은 이어 누구든지 필요한 것을 요구하기에 앞서 공동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역할을 먼저 수행하겠다고 밝혔지만 '을'의 설움을 겪는 마필관리사와 한라마에게 그 약속을 지켰는지 냉철히 되돌아봐야 한다.

제주경마본부는 직원 평균 연봉이 9453만원으로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한국마사회 소속이기에 소속 직원들 역시 높은 급여와 좋은 복리후생을 받는다.

서민층의 돈으로 연간 1조원대 매출을 기록하는 제주경마본부는 이 본부장이 밝힌 '갑과 을의 동등한 관계' 약속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높은 급여도 마필관리사·한라마의 눈물과 피로 얻은 '갑의 횡포'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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