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민철 사회부장

조선 영조 때 선혜청 아전으로 일하던 김수팽이 동생 김석팽의 집에 들렀을 때 일이다. 마당에 놓여 있는 염료 항아리를 보고 김수팽이 동생을 크게 꾸짖었다. 살림살이가 넉넉지 않아 염색으로 살림을 돕고 있다는 동생의 말에 "나라의 녹을 받는 관리로 이런 장사를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가난한 백성들은 무엇을 해서 먹고 살란 말이냐"고 혼을 낸 것이다.

호조 서리 시절 김수팽의 일화도 유명하다. 한 대신이 곳간에 들어와 딸에게 노리개를 만들어준다며 바둑알 몇개를 집어들자 김수팽도 바둑알을 한움큼 집으며 "저는 딸이 다섯이나 되니 더 많이 가져가겠습니다"고 말해 대신을 무안하게 만들었다. 서리라는 말단관리였지만 공직자로서 지켜야할 도리를 잘 보여준다.

조선 초 우의정을 지낸 류관은 울타리조차 없는 낡은 초가집에 살았다. 나라에서 받은 녹은 대부분 마을에 다리를 놓거나 길을 넓히는 데 썼다. 임금이 내린 어찬은 마을 사람들과 나눠 먹고 귀한 하사품도 모두 나눠주었다. 장마철 비가 새자 우산을 펴들고 부인에게 "우리는 우산이라도 있지만 이마저 없는 백성들은 어떻게 비를 피할까"라고 했다고 '필원잡기'에 전한다. 서울 창신동 그가 살던 집이 우산각으로 불렸을 정도다. 그야말로 청백리의 표상이다.

최근 제주 공직사회가 잇따른 부패로 비리 공화국으로 전락하고 있다. 제주도 국장 등 고위직에서부터 말단 기능직 공무원까지 뇌물수수, 음주운전, 공문서 위조, 업무상횡령 등 부패사례를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니 공직사회의 부패가 도를 넘었다는 평가다.

특히 수억원의 공금을 횡령한 도청 여공무원은 빼돌린 돈으로 개인채무를 변제하고, 각종 명품을 구매하는가 하면 제주시는 공금을 횡령한 공무원에 대해 도감사위원회나 사법기관에 수사의뢰를 하기는 커녕 부랴부랴 사직 처리해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까지 사고 있다.

도민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혈세를 탐하는 등 도를 넘은 제주 공직사회 비리에 대해 사법기관의 철저한 수사와 처벌이 해답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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