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성 논설위원 겸 서귀포지사장

   
 
     
 
정강과 신념보다는 당장의 이익과 권력을 좇아 당적을 바꾸는 정치인을 한국정치에서는 철새정치인으로 부른다. 주로 야당으로 활동하다가 집권당으로 당적을 바꾸거나 선거기간 중 집권이 유력한 정당으로 당적을 옮기는 정치인을 경멸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철새정치인이 본격적으로 날갯짓을 시작한 때는 1990년 1월 3당합당 이후로 본다. 물론 이전에도 없진 않았지만 3당합당을 모태로 철새정치인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즉 '여당과 야당이 합당도 하는 판에 당적을 바꾸는 정도가 무슨 문제냐'는 식의 가치혼란을 틈타 철새정치인이 활개를 치게 된 것이다.

결국 당시 집권여당인 민주정의당이 야당이던 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과 야합, 민주자유당으로 변신한 3당합당은 지역주의정치 뿐만 아니라 철새정치인까지 낳은 뿌리인 셈이다. 3당합당 이후 집권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야당 국회의원을 회유해 빼가거나 비리로 물의를 빚은 야당 국회의원이 사법처리를 피하기 위해, 혹은 총선에서 당선을 보장받기 위해 여당으로 당적을 바꾸는 일이 다반사로 나타났다.

이같은 당적 바꾸기는 새누리당 이인제 의원(충남 논산·금산·계룡)이 단연 눈에 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통일민주당 공천으로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 의원은 민자당, 신한국당, 국민신당, 새정치국민회의, 자민련, 국민신당, 새천년민주당, 자유선진당, 선진통일당, 새누리당 등 무소속을 포함해 10번 이상 당적을 옮겼다. 이 과정에서 3번이나 대선에 출마했다 낙선하면서도 6선을 기록한 그는 '피닉제'(피닉스·불사조+이인제)라는 별칭까지 덤으로 얻었다. 이 의원과 달리 단 한 차례 소속을 바꾼 끝에 정치적 생명이 끊긴 불우의 정치인도 없지 않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15·16대 국회의원을 지닌 김민석씨는 16대 대선 당시 정몽준 경선후보의 지지율이 계속 올라가자 노무현 후보를 버리고 정 후보 지지로 돌아섰다가 배신자, 철새정치인으로 낙인찍혀 아직까지도 재기하지 못하고 있다. 내년 6월 전국 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제주에서는 벌써 철새정치인 논란이 한창이다. 불씨는 우근민 지사가 당겼다. 우 지사는 지난 주 "박근혜 정부의 국정철학을 함께 하고 진정한 제주국제자유도시 완성을 위해 새누리당에 입장하고자 한다"며 당에 입당원서를 제출했다. 우 지사가 입당 신청을 공개하자마자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새누리당 내부에서조차 극심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우 지사가 지난 지방선거에서 "이번 선거가 마지막"이라고 공언했던 점과 수 차례의 당적 바꾸기, 성희롱 전력 등을 들어 강력히 성토하고 있다.

1995년 제1회 지방선거에서 신한국당으로 출마, 무소속 신구범 후보에게 패한 우 지사는 1998년 새정치국민회의, 2002년에는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각각 당선됐다. 2004년 4월 허위사실 공표(선거법 위반)로 대법원에서 벌금 300만원이 확정돼 지사직을 상실한 그는 2010년 무소속으로 3선 고지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재임 중 집무실에서 여성단체장을 상대로 저지른 성희롱 전력으로 공천을 받지 못했음에도 선거운동 기간 중 "나의 정치적 뿌리는 민주당"이라고 강조, 오늘날의 철새정치인 논란을 자초했다. 또 한명의 유력한 도지사 후보로 거론되는 김태환 전 지사의 이력도 꽤 화려하다. 1998년 6월 새정치국민회의 공천으로 제주시장에 당선된 김 전 지사는 2002년 당내 경선을 거부하고 탈당, 무소속으로 재선된 뒤 2004년에는 한나라당 소속으로 도지사에 올랐다. 이어 2006년에는 다시 무소속으로 재선에 성공한 뒤 지난달에는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세계평화의 섬 제주가 이제는 철새도래지가 됐다는 비난이 전국적으로 빗발치는 가운데 사면초가에 놓인 우 지사가 끝까지 완주하며 제2의 '피닉제'로 기사회생하거나 신구범·김태환 전 지사 중 한 명이 재집권, 제주판 3김시대를 이어갈지 아니면 세대교체가 이뤄질지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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