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원학 제주생태교육연구소 소장, 논설위원

   
 
     
 
요즘은 소나무 재선충병 방제작업 모니터링을 하면서 마을 숲과 오름을 찾고 있다. 며칠 동안은 재선충에 감염돼 고사된 소나무를 보면서 쓰디쓴 마음으로 현장을 찾았으나 지금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란 무엇인가'라고 하는 의문을 품고 숲을 바라보고 있다. 소나무재선충병 고사목을 제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에 또다시 단풍처럼 붉게 물든 고사목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나 인간을 조롱하듯 그 자리를 넓혀가고 있다.  멀리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붉게 물들어 고사하는 나무들이지만 현장에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솔잎 끝자락이 노랗게 변해 가는 감염목들도 어렵지 않게 관찰된다. 이미 죽었거나 죽어가는 나무들로 가득한 숲에 서있으면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과 아쉬움이 교차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라고 자꾸 반문할 따름이다.

한그루의 고사목을 제거하기 위해 온갖 장비를 총동원해야 하고 주변의 농경지나 주택 등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사전 준비 작업은 매우 신중을 기하고 오랜 시간을 요한다. 고사목이 잘려나가 쓰러지면 토막을 내고 가지를 잘라내어 일정한 장소로 옮긴다. 40년 이상 자란 소나무 한 토막을 옮기는 일은 청·장년 두 세 명이 힘을 모아야 가능할 정도로 그 무게가 상상을 초월한다. 경사가 가파른 오름이나 잡목으로 우거진 곶자왈에서는 피를 말리는 전쟁을 불사할 정도로 힘이 들고 어렵게 진행된다. 고사목이 옆으로 넘어질 때 울리는 굉음에도 깜짝 놀라 소스라칠 정도로 눈앞이 어지럽다. 잘라낸 고사목 밑 둥지를 삽이나 도끼 등으로 껍질을 벗겨내는 일 또한 고되고 더디게 진행된다.

소나무 재선충병 방제작업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 할지라도 절망이나 허무함을 주는 것은 아니다. 오름과 곶자왈, 그리고 동네 숲에서 소나무만큼 강인한 생명력으로 비상하는 작은 숲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후박나무·까마귀쪽나무·참식나무·졸참나무 등 난대수종으로 알려진 하부식생들이 또 다른 숲을 만들기 위해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어쩌면 이러한 나무들이 자라서 만든 숲이 미래 제주의 숲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소나무들에게 너무나 미안할지 모르나 대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게 인간이 도리가 아닐까 한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숲은 단일 수종보다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로 이뤄져야 생존력이 강해지고 우월한 유전인자를 형성하면서 생물다양성과 유전자다양성을 유지한다고 한다. 이 시점에서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제주 숲은 어떤 것인지를 깊이 반성해보고 고민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물론 소나무가 제외되거나 걸림돌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풍요로워지는 숲의 삶에 인간의 간섭을 최대한 배제하고 숲의 들려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는 것이다. 작은 곤충의 이야기도 바람의 이야기도 새들의 이야기도 모두 들어보자는 것이다.

현재 도내 곳곳에서는 전문 산림기술자들과 해병대원들이 제주를 찾아 재선충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고 마을마다 자원봉사자들이 마을 숲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제작업현장은 소나무 숫자만큼 다양한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작은 돌멩이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고 덩굴줄기도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만든다. 방제작업 도중 목숨을 잃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렸다. 나무에 부딪혀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시간이 흘러 다시 건강한 숲이 만들어 지면 그때 우리는 희생자의 이름으로 이 숲을 만들었노라고 오랫동안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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