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도리 조간대. 해안도로 개설과 함께 해안마을의 제방이자 바다와 육지의 완충지대인 모래언덕이 무너지고 갯벌이 매립됨으로써 생태환경이 훼손되고 있다.

◈하도 조간대·빌레못·너븐드르못(구좌읍 하도리)<1>

 쓸쓸하다.처량하다.겨울의 절정에 선 지금,춥지않는 여행지는 없는 걸까.

 구좌읍 하도리는 해안선이 길다.구좌읍 세화리에서 종달리로 이어지는 11.9㎞의 해안도로를 따라 ‘돛부리코지 큰성창’‘해변물’에서 ‘빌레개’‘한개창’‘원개’‘흰모살개’‘먹돌개’를 거쳐 창흥동의 ‘용목’까지 가는 길에 579㏊규모의 마을 공동어장이 자리잡고 있다.   

 하도리는 현기영의 소설, 「바람타는 섬」의 주무대가 되는 곳이다.

 그 바다는 예나 지금이나 매년 입춘이 가까워지면 화톳불과 풍물소리에 따라 영등제가 올려진다.몸을 정갈히 한 잠녀들은 공동어장에 '좁씨'를 뿌리고 전복·소라가 잘 되기를 기원한다.

 별방진의 길목에 자리잡은 포구 멀리 방어진으로 돈을 벌러가는 ‘여옥’‘영녀’등과,일제의 밀정이던 남편을 버리고 무생이를 따라 출가해 배에 올랐던 ‘순주’가 떠난 '한개창'은 옛 별방진의 성터가 바람막이 하고 있다.

 절망과 질곡이었던 지난 시대의 그늘진 역사를 얘기하듯 성벽 잔해 곳곳에는 노인의 피부에 피는 저승꽃 같은 해묵은 돌이끼가 파도와 바람을 벗삼으며 세월의 고절을 되새김질 하고 있다.

 하도 조간대는 예로부터 해산물이 풍부했을 뿐만아니라 풍광이 뛰어난 곳이다.

 그곳의 바다를 마주보고 서면 이 세상은 3가지 색조로 단조롭다.담백하다.

 하얀 백사장에 파도 거품.코발트 빛 겨울바다.바람과 구름이 몰려 다니는 하늘은 무채색이다.그 모습이 마치 선과 여백에 비중을 둔 동양화와 같다.

 더욱이 이곳에는 문주란 자생지인 토끼섬을 끼고 있는 데다 제주도지정 기념물 제24호인 별방진(別防鎭)과 환해장성(環海長城)이 있고,원시 어로시설물인 ‘백병개’‘먹돌개’‘흰모살개’‘광애통’‘멜튼개’‘새개’‘다칫개’‘불턱개’‘도리원개’‘중퉁굴촘’‘석은엿개’‘코짓개’‘몰텅개’‘궤숙개’‘조랑개’‘겡애집알개’‘엉숙개’‘웃주억개’‘알주억개’‘버렝이밧알개’‘무두망개’‘빌렛개’‘낙짓개’‘펄낭개’등의 원담이 자리잡고 있다.

 이가운데 ‘광애통’은 ‘난도리여’ 남쪽 후미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난도리여는 토끼섬을 말하며 광애통은 다시,큰 광애통과 족은 광애통으로 구분된다.

 또 난도리여 인근 ‘당목’서쪽에 자리잡은 ‘멜튼개’는 길이가 127.4m에 이르는 비교적 규모가 큰 원담이다.조간대 중층에 터잡고 있으며 1천평은 넘을 듯 싶다.

 특히 ‘당목’과 ‘난도리여’사이에는 폭 2.8m,높이 1.4m,길이 100m안팎의 ‘난도리 성창’이 자리 잡고 있어 고기잡이에 안성맞춤.밀물의 끝자락에 실려 난도리 성창까지 온 멸치와 따치·광어·오징어 등의 어족들은 퇴로가 차단되기 십상이다.썰물때면 동쪽으로 흘러가는 물살을 따라 영락없이 광애통과 멜튼개에 갇히고 만다.

 버렝이밧알개의 ‘버렝이’는 갯지렁이를 의미한다.갯지렁이는 온 몸의 마디를 뻘밭에 밀면서 기어간다.갯지렁이가 기어간 뻘 위의 자국은 난해한 문자와도 같고,고통스런 글쓰기의 흔적과도 같다.

 웃주억개와 빌렛개는 조간대 상층에 자리잡고 있고 낙짓개는 조간대 중층 물웅덩이를 이루는 곳에 있다.낚지가 많이 잡힌다고 해서 낙짓개다. 

 그러나 하도리 조간대는 개발바람에 밀려 몸살을 앓고 있다.대표적인 게 해안도로.갯벌이 매립되고 모래언덕이 무너졌다.

 해변에 도로가 날 경우 그것은 해안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또 해안사구와 해변의 순환시스템은 어떻게 이뤄지는 것일까.

 매년 겨울이면 북서풍에 밀려 해변은 모래바람에 휩싸인다.모래언덕,즉 해안사구는 바람에 운반된 모래가 해안식물에 붙잡혀 오랜기간에 걸쳐 층층히 쌓여 만들어진 것.태풍이나 해일때면 해안마을을 보호하는 제방이자 완충지대였다.

 이 뿐만아니다.해안사구는 땅 위에서 뿐만아니라 땅속에도 바다와 육지의 경계를 만든다고 한다.

 우선 눈에 띄는 게 물저장 원리.비가오면 모래속으로 빗물이 침투하게 된다.또 저장된 빗물의 양에 따라 바닷물이 점점 더 밀린다고 한다.일종의 민물의 띠가 형성됨으로써 비중이 큰 바닷물이 사구 밑으로 밀리는 것.따라서 모래언덕이 사라지면 바닷물을 막을 방어막이 무너진 것과 같다.

 그러나 지금의 개발은 난개발에 가깝다.

 지금 방식대로 라면 하도리는 결국 건강한 삶의 체취가 묻어나는 그리움의 공간이 아니라 ‘그곳에 가고 싶다’는 식의 상투적인 시구나 떠올리는 오만과 편견의 바다로 변하고 말 것이다.<글=좌승훈·좌용철 기자·사진=김영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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