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은 제주대 행정학과 교수, 논설위원

   
 
     
 
최근 케이블 채널에서 1994년도에 신입생이었던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가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드라마에서 당시 'X세대'라고 불렸던 젊은이들이 가지고 다니는 최신 장비는, 지금은 사라져버린 '삐삐'다. 삐삐도 없던 시절 학교를 다녔던 필자 세대에는 학교 앞 다방(이 또한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 중 하나다)의 게시판이 약속장소나 시간의 변경을 알리는 유일한 수단이었으니 개인 이동통신장비인 삐삐의 등장은 그야말로 신세계의 시작이었다.

어느 시점부터인가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 강국이 됐고 애플에 유일하게 대적할만한 이동통신 하드웨어를 생산해내는 나라가 됐다. 미술관이나 박물관, 관청같은 공공건물이나 음식점, 커피전문점, 거리, 버스, 심지어 지하철 안에서도 전화벨소리와 통화하는 소리는 물론이고, 무료 와이파이(free-wifi)가 제공되는 환경 아래에서 인터넷의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노트북이나 태블렛 PC같은 장비를 휴대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커다란 백팩을 등에 메고 귀에는 이어폰을 낀 채, 스마트폰 삼매경인 젊은이들은 눈만 돌리면 어디에서건 찾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정보화와 스마트폰은 우리에게 새롭고 편리한 세상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우리를 같은 장소에 있으면서도 각기 다른 공간에 존재하게 만들었다. 벨이 울리면 어디서건 큰 소리로 전화 통화를 시작한다. 바로 옆에, 앞에 노약자나 임산부가 있어도 스마트폰에만 집중한다. 뒤에 서 있는 사람이 내 등에 맨 백팩에 눌려 불편해하고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정신은 손바닥만한 스마트폰 속의 인터넷 세상에 가 있을 뿐, 내 몸이 서있는 곳의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의 공공장소에서는 통화하는 소리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노는 젊은이를 보기 어렵다. 아예 전파가 닿지 않는 곳도 많고, 서비스 지역이라고 해도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전화를 받는 것은 제정신에 하기 힘든 일이다. 필자도 처음엔 이런 것이 불편하다고 느꼈고, 역시 우리나라만한 정보통신 강국이 없다고 자부심까지 느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책을 읽거나 노약자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타인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도록 백팩을 앞으로 돌려 매는 사람들을 보면서, 공공장소에서는 전파가 닿지 않는 환경이 오히려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에 지하철이 없는 것이 다행스러울 지경이다.

논어의 「자한」편에 보면 공자께서 "구이에 가서 살고 싶다(子欲居九夷)"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어떤 사람이 "그곳은 누추한 곳인데 어떻게 그런 데서 사시려고 그러십니까?(或曰陋 如之何)" 하고 물으니 이에 공자가 답했다. "군자들이 살고 있는데 어찌 누추함이 있겠는가(子曰君子居之 何陋之有)" 여기서 구이는 동이(東夷), 곧 우리나라를 말한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산해경'(山海經)에는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 군자국(君子國)이라 칭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은 이러한 선조들의 후손이라 자부할 수 있을까?

20여년이 지나 지금 이 순간이 추억속의 그 시절로 드라마화가 된다면, 그 때 중년이 된 새내기들에게도 2013년은 향수에 젖은 시절로 기억될 것인가? 대학입학과 동시에 토익을 끼고 다니고, 스펙과 학점, 아르바이트로 바쁜 속에서, 스마트폰만이 유일한 취미이자 친구인  저 스무 살들에게도 과연 돌아가고 싶은 따뜻한 기억들이 남아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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