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석 편집국장

   
 
     
 
주민의 행복과 삶의 질을 우선시하는 지방의 시대가 열린지 올해로 18년째에 이르고 있다. 1995년 지역의 지도자를 주민들이 직접 뽑는 지방자치시대가 본격 부활하면서 지방정부와 주민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질서가 구축되고 있다.

중앙이 도지사나 시장·군수를 임명하던 관선시대는 중앙정부의 결정과 지배로 지역에 필요한 폐기물처리시설 설치나 매립사업 등 여러 가지 공공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밀어붙이기' 행정이 추진됐다. 이 과정에서 주민의 생각이나 참여는 대부분 무시됐고, 지방공무원들은 주민에 대해 묵묵히 따르고 협조토록 고압적인 자세를 보였다.

하지만 1980년대 민주화에 이어 1990년대 지방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1995년 기초 및 광역자치단체장 선거가 실시되면서 지방자치가 자리를 잡고 있다. 지방자치시대는 관선시대의 일방행정과 지방공무원의 고압적인 행태를 바꿨다. 중앙을 바라보던 지방공무원의 눈이 주민을 향하고, 마을로 발길을 향하는 움직임도 바빠졌다. 주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책은 현장에서 중단·폐기되거나, 반대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시대는 중앙과 지방, 그리고 지방과 그 지역주민이 협력할 때에 비로소 공공과제가 해결될 수 있음을 확인시켰다.

제주지역 역시 18년간 지방자치제를 수행하면서 지방공무원들의 눈이 주민을 바라보고 있다. 주민과 지역을 깊이 연구하고, 지역에 매몰된 인적·물적·자연자원을 발굴하면서 자치의 생업에 승부를 거는 모습도 목격된다.

그러나 아직도 공직사회 위주로 정책을 입안·결정, 주민과 대립하는 사례가 그치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에 불거진 폐기물처리시설 대체부지 선정이다. 제주시 봉개동 쓰레기매립장 포화시기가 임박했음에도 해결방안을 제때 찾지 못하고, 결국 주민의견을 무시한 입지선정 절차가 강행되면서 반발을 자초하는 실정이다. 봉개동 매립장 사용 연한이 당초 예상했던 2016년 보다 1년6개월 가량 단축, 새로운 대체부지 선정이 필요함에도 늑장 대응하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게다가 새로운 대체부지 선정은 주민과의 대화 보다 행정절차 이행에만 급급, 행정 불신 및 주민 반발을 초래하고 있다. 대체부지로 제주시 회천동과 구좌읍 동복리, 조천읍 교래리 등 8곳 마을을 선정해 주민설명회를 열려고 했지만 5곳 마을은 주민 반대로 무산됐다. 나머지 3곳 마을 주민설명회도 반발이 적지 않아 정상적인 개최가 쉽지 않다. 폐기물처리시설 조성에 따른 구체적인 환경오염방지책과 마을발전지원계획을 명시하지 않고, 법규에 따른 행정절차 이행에만 매몰된 결과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더욱이 제주도는 8개 마을 주민들을 '님비'(NIMBY)라는 혹독한 단어로 뒤집어씌우려 하면서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내년 7월 쓰레기 처리대란이 우려된다는 폐기물처리시설의 필요성만 강조, 주민 갈등을 악화시키고 있다.

제주도의 폐기물처리시설 대체 입지 선정은 10여년전 환경시설 설치과정에서 겪었던 주민갈등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마을 단위의 소규모 쓰레기매립장 및 광역폐기물처리시설의 필요성만을 내세운 결과 주민과의 갈등이 장기화, 적지 않은 사회비용을 감수했다.

폐기물처리시설 입지선정 갈등은 공직내부의 일하는 방식을 제대로 정비하지 못한데서 비롯됐다. 지방자치 시행 18년째를 맞고 있지만 내부의 공공과제 해결방식은 변하지 않으면서 같은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지방의 시대는 주민의 수요를 파악해 행정서비스를 공급해야 하지만 '행정 기준'이란 고정관념의 똬리를 벗어나지 못한 결과 공공사업의 갈등을 초래하는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

공무원들이 주민설명회라는 요식적이고 형식적인 대책은 세워도 마을에 대한 문제의식과 주민들의 목소리를 보다 더 진솔하게 듣고, 정책을 입안하는 능력의 부족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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