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봉훈 변호사

   
 
     
 
의사인 갑은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던 을이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자 전문의 과정을 마쳐야 한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우며 여러 차례 낙태를 권유했다. 을은 갑에게 출산이나 결혼이 갑의 장래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면서 아이를 낳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갑은 을에게 출산 여부는 알아서 하되 더 이상 결혼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갑은 그 이후에도 을에게 아이에 대한 친권을 행사할 의사가 없다고 하면서 낙태를 할 병원을 물색해 주기도 했다.

결국 을은 갑의 의사가 확고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갑에게 알리지 않은 채 자신이 알아본 병원에서 낙태시술을 받았다. 이 경우 갑은 낙태교사죄로 처벌받을 수 있을까?

범행의 교사를 받은 사람이 범죄의 실행에 착수한 경우에 있어서 그 범행결의가 교사자의 교사행위에 의해 생긴 것인지 여부는 교사자와 피교사자의 관계, 교사행위의 내용 및 정도, 피교사자가 범행에 이르게 된 과정, 교사행위가 없더라도 피교사자가 범행을 저지를 다른 원인의 존부 등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 사건의 전체적 경과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방법에 의해야 한다.

이러한 판단 방법에 의할 때 피교사자가 교사자의 교사행위 당시에는 일견 범행을 승낙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이후 그 교사행위에 의해 범행을 결의한 것으로 인정되는 이상 교사범의 성립에는 영향이 없다.

법원은 위와 같은 법리를 전제로 해 갑은 을에게 직접 낙태를 권유한 당시뿐만 아니라 출산 여부는 알아서 하라고 통보한 이후에도 계속해 낙태를 교사했고, 을은 이로 인해 낙태를 결의·실행하게 됐다고 봄이 타당하며, 을이 당초 아이를 낳을 것처럼 말한 사실이 있다 하더라도 갑의 낙태 교사행위와 을의 낙태 결의 사이에 인과관계가 단절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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