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미 시인 첫 시집「자벌레 보폭으로」

'살 만하면 이별이듯 이별 앞에 밑줄 긋듯/ 사랑의 마침표 자리에 섬 하나가 떠오르듯/ 점점이 수로를 따라 구리음을 켜단다// 그 푸르던 풀벌레 소리 다 어디로 숨었을까/ 초가을 황조기 떼가 노을 속으로 잠적한 후/ 보름째 묵묵부답인 달이 한참 야위다//'('달이 한참 야위다'중)
 
아스라한 제주 풍경 속에서 시인의 순정함 심상이 눈길을 끈다.
 
지난 2010년 시인으로 얼굴을 내민 강은미 시인의 첫 번째 시집「자벌레 보폭으로」는 활동만큼이나 당차고 힘 있는 습작들의 모음집이나 다름없다.
 
'자벌레 보폭'으로 이 세상에 길을 내는 시인이 있어 제주의 새벽바다는 한껏 힘차게 보인다. 겨울, 밤, 달, 바다, 노을, 썰물 등으로 이어지는 형상화는 모성의 품안에 살아 숨 쉬는 강인한 '섬의 미학'으로 다시 태어났다.
 
강 시인은 "시작(詩作)은 내 오래된 몽유의 흔적"이라며 "반쪽의 나를 내려놓지 못한 어리석음을, 한 치 앞도 더 나아가지 못한 옹색한 걸음을 이번 시집으로 자백한다"고 출간 의미를 더했다. 한국문연·8000원. 고혜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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